오래 전에, 학생이 아니면서 교육이라는 것을 자주 받은 적이 있다.
그 중에 "정신교육"이니, "정신훈화"니 하는 것이 있었고, "의식개혁", "의식교육"이라는 것도 있었다.
그 교육받은 내용중에 "아하, 이 것을 정신(精神)이라 하는구나", "오오, 이 것이 의식(意識)이라는 것 이구나"
하고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 추호도 없었다.
그저 가르쳐 주는대로를 정신교육, 의식교육이라고 알았을 뿐 이다.
그러니 "정신이, 의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정신이 정신이고, 의식이 의식이지" 하는
질문과 문답이 같은 동어반복이 당연한 것 처럼 여기는 것이 거의 보편적이었지....
지금의 일반적 상식은 과연 다를까....?
"잠 들었다, 잠 에서 깨어 났다"는 말을 흔히 하지만, 사람의 무엇이 자고 깨고 하는지를 모른다.
"의식을 잃었다, 의식을 되 찾았다"는 말도 하지만, 사람의 무엇이 의식을 잃고, 찾고 하는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정신과 의식이란 단어의 뜻을 모르니, 모르는 것을 어찌 구별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구별해서 답하라고 하면 태연 자역하게 "정신은 정신이고, 의식은 의식이지"...할 뿐 이다.
여기(이 블로그)에서 필자의 글을 읽은 분은, 적어도 여기서만은 정신과 의식을 정확히 구별할 수 있다.
사람의 두뇌(우) 속에서, 건너 편(좌뇌)에서 생주이멸(떠 올라서, 머물고, 변하다가, 사라지는)하는 의식(意識)을
대하여 아는 기관, 즉 내 자신이 정신이고,
사람의 두뇌(좌) 속에 형성되어 있으면서 생주이멸하는 시공(時空)단위의 정보(識=기억, 상상)에 부가되어 있는
상대적 언어인 마음(意)과 이름(名)을 합친 것이 하나의(개별) 의식, 그 전체를 의식계라 하고, 주관적 이름으로는
'나(我)의 경험", "나의 상상", "나의 마음"이라 할 수 있다.
그 어떤 의식이건, 그 모두가 자기 두뇌 속에 있는 것 만이 내가(정신이) 대(對)하여 알 수 있는 것 이므로,
"내가 아무개를 안다" 거나, "내가 금강산을 안다"거나, "내가 푸틴을 안다"거나 하지만, 진실로는
이 몸의 두뇌 속 의식을 아는 것 이상도, 이외도 아니지만, 그런 줄 아는 이 거의 없다.
내가 "이 사람(자기)을 안다, 당신을 안다, 남대문을 안다"고 하는 것 역시 이 몸의 두뇌속 의식을 아는 것 뿐 이다.
이 의식계를 대하여 아는 내가 의식계로 갈 수도 없고, 의식계가 내게로 와서 붙을 수도 없다.
내는 언제나 여기(此岸)에 있고, 나(의식)는 언제나 저기(彼岸)에 있을 뿐 이다.
이와 같은 지극히 단순한 사실을 모르고 착각에, 혼동에 빠지는 정신이 거의 대부분이다.
마음(의식)을 잡을 수 없으니, 마음에 잡힐 수도 없고, 마음에 잡히고 묶이지 않으니 해탈이 있을 수도 없다.
마음이 내게 붙을 수 없으니 마음을 떼고, 놓고, 버리고 할 일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반야심경 에서는 "그런 모든 일이 없다(無)"는 것을 여러 번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기에 있는 정신이(내 스스로) 깨닫지 못 하고, 건너 편에 등장해 있는 나(의식)를 내 라고 착각에
빠지면, 그 곳에 있는 "나"가 [내] 자신의 실제 상황인 것처럼 혼동에 빠지게 된다.
비유하자면, 영화(또는 꿈)속 가상 현실에 내가 있는 것처럼 혼란에 빠지는 것과 같다.
여기까지 이해하게 되면 정신과 의식의 관계는 딱 두 가지 밖에 없다는 것도 저절로 이해되리라.
1. [내] 스스로 깨달음(自覺)을 굳건히 세우고 의식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관계.
2. [내] 스스로 개닫지를 못 하여(不覺), 의식을 착각, 혼동에 빠져서 잡(히)고, 묶(이)고, 갇힌 것 처럼
지배당하는 환상적인 주종전도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