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물어 보면 뭐라고 말 할까?
"독신으로 사는게 편한가, 부부로 사는게 편하냐?"고.
그야 말로 구구 각색이리라.
왜 혼자 사느냐는 물음에,
"혼자가 편해서"라는 대답 속에는 "함께(동거)가 불편해서" 라는
대답이 이면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불화하면서 사는 사람에게, 왜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사느냐고 물음에,
"그래도 함께 살아야지..." 하는 대답 속에는 "(헤어져서) 혼자 살기가 불편
해서"라는 대답이 이면에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동거와 독거를 양 극단으로 보면 둘은 상호 모순적이다.
그렇지만 동거와 독거를 개인적 선택의 영역으로 본다면 제3의 유형도
충분히 가능하다.
동거와 독거를 함께 섞은 것 같은,
달리 말 하면 "동거 같은 독거", "독거 같은 동거" 유형이다.
소위 "계약부부"라는 것이 그 전형이다.
자, 이렇게 세 유형으로 구별해 놓고 "어느 것이 나으냐(좋으냐, 편하냐)?"
하고 물어도 대답은 구구각색이 될 수 밖에 없다.
소위 "마음먹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두뇌 속에, 어느(예:동거) 것(識)이 딴(예:독거, 별거) 것(識)에 비하여
"낫다(또는 좋다, 편하다, 마땅하다, 유리하다 등등 긍정적인 언어인 意)"는
말은 바로 마음(心)이기 때문이다.
어느 유형(識)을 낫다(意), 어느 유형을 못 하다(意), 어느 유형을 낫지도
못 하지도 않다(意) 하는지는 그 사람의 두뇌 속에 성립, 존속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느 유형을 선택해야 하느냐를 주제로 하여 토론까지는 할 필요가
있더라도, 무조건 제 주장만 옳다고, 그와 다른 타인의 주장은 그르다는
식의 논쟁같쟎은 언쟁은 백해 무익이다.
대체로 독신주의자는 독신예찬 보다는 동거불신 내지는 반대가 그 이유이고,
동거주의자는 동거예찬 보다는 독신불편 내지는 그 폐해가 반대 이유이다.
절충주의자는 양극단적 사고의 폐해만을 보완하는 것 같을 뿐, 그 자체로서의
이유를 제시하지 못 한다.
그런데 이런 논쟁에는 대체로 가장 중요한 근본, 핵심이 소외되어서 없다.
누구의 무엇을 위해서냐? 하는 주체적, 목적적 사고의 결핍이다.
누구의 생명(안전)에? 정신(자유)에? 마음(恣意)에? 육신(건강)에?....
어디에 독신이, 동거가, 혼합형이 낫다는건지.......
어쨌거나, 어느 유형이 좋으냐는 물음에 대답하는 정신자세에 둘을 가정해 본다.
첫째는 두뇌 속에서 나오는 그대로 대답을 하는 자세.
둘째는 일단 멈추고 진지하게 검토해 보고 대답하겠다 하는 자세.
명심할 것은 "어느 유형이 낫다"고 확신하고 있어도,
그런 확신적 내용이 때와 장소, 사람에 따라서는 전혀 맞지 않을 수가 허다하다는
것 이다.
사람들의 편식견(소위 편향적인 식견)이 어떤지 알고 보면 재미(?) 있다.
"고독해서 괴롭다" 하는 사람들, 동거하게 되면 또 "함께 살기 괴롭다" 하고,
"피곤해서 함께 살기 괴롭다"는 사람들, 홀로가 되면 "고독해서 괴롭다" 한다.
동거중엔 독신의 불편을 못 보고, 독신일 땐 동거의 불편을 못 본다.
동거가 불편하다는 사람은 동거의 편리함을 못 보고,
독신이 괴롭다는 사람은 독신의 안락을 못 본다.
요약하자면 다 "의식해(되어)서 보기(알기 나름"이지만,
그런 줄 모르고 이렇궁 저렇궁 할 뿐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