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그리움", "미움", "부끄러움", "후회스러움", "무서움" 등등 끝 부분에 "움"이
붙는 의식적인 현상을 번뇌(惱)라 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괴로움(苦)과
합쳐서 고뇌(苦惱)라 한다. (苦憫이라 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이고 목적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그 것들을 제대로 알기는 커녕, 차려서 알려고나 할까?
단언컨대, 전혀 모르면서 "다 안다"고 알기 때문에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떨어 져 있어서(愛別離),
싫어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서(怨憎會)
바라고 구하는 것을 얻지 못 해서(求不得)......괴롭다(苦)고 알고 있다.
함께(會) 할 수 없는(不可能), 따로(離) 할 수 없는(不可能), 얻을(得) 수 없는
(不可能) 것을 "바라는 마음(意慾, 慾心), 허물(過)있는 욕망(過慾) 때문에
괴롭다(苦) "는 진실을 알지 못 하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바라는(慾心)대로 안 되어서 (괴롭다"고 알고 있지만,
진실로는 [안 되는 것을 바라는 욕심 때문(괴롭다) 이다.
자, 그렇다면, 안 되는 것을 왜 바랄까?
첫째, 안 되는 것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째, 안 되어 있는 것(현실)에 비하여 너무나 달콤하기(좋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조금이라도 짐작할 수 있다면 대단하다 안 할 수 없으리라...
바로, 그 사람의 두뇌 속 의식게에 등장해 있는 환상적인 의식이다.
현실로서는 거의 내지는 전적으로 불가능 하더라도 상상으로는
완전히(?) 실현되어 있는 것 이니 환상(幻想)이라 할 수 밖에.
"보고싶은 사람과 만나면", "미운 사람에게 통쾌하게 복수하면",
"그 것을 가지면".... 가상은 상상이지만, 그 것을 실현할 가능성이
거의 내지는 전적으로 불가능하니 현실적으로는 환상이 아닐 수 없다.
이상이 현실적으론 안 되는 것이 "현실처럼 되어 있는 환상"이다.
다음, 이 환상이 현실적 판단(애별리, 원증회, 구부득)과 비교되면
어떤 평가가 성립될까?
"되면 -너무, 너무- 좋겠다" 하지 않겠는가?
이상이 너무나 매혹적인 달콤한 유혹(?)이다.
모든 번뇌, 고민, 고뇌의 사이비 "목적"은 바로 "(불가능한)환상의 실현"이다.
따라서 그 것이 환상이고, 실현불능이고, 자기의 인생에 백해무익임을
알면(그래야만) 단번에 해소가 가능하다.
반면에 그걸 환상인줄 모르고, 싷현불능을 경시 내지는 무시하고, 자기 인생에의
역효과, 폐해를 도외시한다면 번뇌의 불꽃 속에 그 인생이 어찌 견디리오.
천국같은 움막이 아니라, 인생을 좀 먹고 파멸로 유혹하는 움막이거늘....
단지 결정적, 핵심적인 [힌트] 하나가 필수적이다.
"움"을 다스일 수 있고, 다스려야 하는 자 스스로(自)의 깨달음(覺) 이다.
"움" 막 속을 천국처럼 알고 벗어나려 하지 못 하는 1인칭 '나(我)"가 아니라,
그걸 자유자재로 다스릴 초인칭 칭자인 [내]로서의 자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