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는 "내우외환(內憂外患")을 다음과 같이 정의해 놓고 있다.
"나라 안팎(內外)의 여러 어려운(患) 일들과 근심(憂)거리"라고.
여기(이 글)에서는 개인적 차원에 한정하여
"자기 내부의 근심꺼리(內憂)와 외부에 대응할 난제(外難)"라 정의(개념화) 하련다.
자기라는 한 사람을 잠정적으로 생체(생명과 신체), 신체(정신인 몸?),
심체(마음이란 몸)라는 3위로 구별해 놓고, 그 각각을 지배하는 이치랄까, 법칙이랄까
하는 것이 무엇인지 탐구해 볼 수 있겠다.
생명체는 생리가 지배하고, 그 생리는 신체(정신, 내 스스로)나 심체(마음)로
달라지게 개입할 수가 없다.
단지 생리를 순종하고 도와 주어야 마땅하다.
아무리 회피하고 저항해도 생리를 이길 수는 없다.
신체(神體 = 정신기관)는 생명(생체를 살게 하라는 명령), 운명(생체의 삶을
운전하라는 명령)을 본분으로 하고, 심체(心體 = 意識)를 도구로 삼아서,
스스로(自) 전적인 자유(自由意志)와 책임을 부담함을 그 이치로 한다.
심체(心體 = 意識界)는 [컴퓨터]에 저장된 자료(識)와 의사결정(意) 같은
것 으로 당연히 스스로 주체일 수가 없다.
그 이치(心理)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주로 경험과 학습으로 입력(저장)된
가치관(?) 그대로를 따르려 한다.
예컨대, 심체에서 "나(我)는 그 일을 하고(識) 싶다(意慾)"는 마음이 표현되어
나오지만, 그 "나(我)는 실체가 없는 가상적 주체일 뿐, 그런 소리를 실제로
내는 주체가 아니다. (AI나, 컴퓨터, 녹음 테잎에서 "나는" 하는 소리가 난다
고 그 안에 스스로 "나"라고 나서는 실체가 없듯이)
그래서 [내] 스스로(自), 그런 '나(我)'를 만나서 상대하려고 해도 -실제론
없으니(無我) - 만날 수 조차 없다.
이상 생명체, 정신, 마음(의식계) 세 차원이, 그 위계가 [생명체-정신-마음]
이란 체계로 확립된 통합적 질서를 이루고 있으면 내우가 발생할 가능성도
거의 없고. 남아서 시달릴 내우도 거의 없다.
욋적인 대응도 적절하게 예방, 대처할 수 있어서 외환이 발생할 가능성도,
오래 끌 일도 극히 적어지게 된다.
바꿔서 말 하자면,
위의 세 차원의 위계가 "마음-정신-생명체"로 위계가 전도되어 있거나,
혼란스런 갈등관계에 있으면 내우외환이 중중첩첩이 아닐 수 있겠는가?
내우와 외환을 개념화 하고, 실제로 적용할 자유와 책임은 전적으로 3위의
중간에 있는 내 스스로의 몫 이다.
[내] 스스로의 전적인 자유와 책임을 모르는채로 알핏 보자면 마치
마음(번뇌) 때문인 것 같지만, 그 마음을 다룰 완전한 자유와 전적인
책임이 [내]게 있음을 깨닫게 되면 내우 외환의 대부분을 쉽게 해결,
해소할 수가 있게 된다.
소위 거의 모든 인류가 집단적으로 시달리는 근심, 걱정, 고민, 불안,
번민 등등 이름의 "번뇌"라는 것을 당장에, 간단하게, 쉽게, 수월하게
해소할 수 있게 된다.
예컨대 "그 일이 안 되고, 못 하고, 안 됀다 해서 속 상한다"는
고뇌를, 자기(생명체)의 삶에 백해무익한 마음(욕망)이구나...
(저절로 포기됨)" 하면 그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