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끼리,
"네가 잘못 했다",
"아니다, 내 잘못이 아니다",
"네 잘못이 맞다니까, 사실이라니까!?",
"내 잘못이 아니라니까, 그런 사실이 아니라니까!?"
"길 가는 사람에게 물어 봐도 네 잘못이 맞다 할꺼다 !"
"운동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물어 봐도 네 주장이 틀렸다 할꺼다"
이와 유사한 언쟁이 오고 가는 것을 더러 보고 듣게 된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나면, 그게 얼마나 우매하고
백해무익한 일인지 판단하기 어렵지 않겠지만,
그 정확한 까닭을 이해하지 못 하면 제 두뇌 속에서 반사적으로
일어나는 그(두뇌속 의식계) 나름의 판단에 빠져서 갑이 맞다느니,
을이 틀렸다느니, 둘 다 틀렸다느니 하는 등 제 주장에 빠질 것 이다.
결론부터 말 하자면, 언쟁하는 그 두 사람들 모두의 주장은 사실이면서
사실이 아니다.
지금 보이는 [잘, 잘못한 것] 이라는 다섯 글자 모양은 엄연한 [사실]
이지만, 그 글자 말고는 그에 해당되는 실제 [사실]은 추호도 없다.
그러니 누군가가 그 글자를 [사실]이라고 한다면 맞고, 그 글자의 뜻
(두뇌 속 의식)을 "주장하는 사실"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야 맞다.
이 글 제목의 뜻을 이해하기가 쉬우면서 어렵다 할만 하리라.
사실인 점에선 (주장)사실이 맞고, 사실이 아닌 점에선 (주장) 사실이
틀렸다.
왜 그럴까?
[사실]과 "사실"이 다르기 때문이다.
[있는(있었던) 그대로의 사실]을 [사실]이라 약기(略記)하고,
"주장하는 그대로의 사실"을 "사실"이라 약기하여 비교해 보면,
누구도 [사실]이 아닌 [사실]에 관한 두뇌속 의식(意識) 밖에는
알 길이 없는데 [사실]을 안다고 "사실"을 아무리 확신하고,
자세히, 크게 주장해 본들 그게 주장하는 [말(음성)이나 글자]로는
엄연한 [사실]이지만, 그 이외의 [사실]일 수는 추호도 없다.
그러니 모든 사람의 "(주장)사실"은 형식으로는 엄연한 [사실]이니
[사실]임이 맞다 해야 맞고, 그 이외로는 추호도 [사실]일 수 없으니
[사실]이 아니다(이다, 맞다 함이 틀렸다) 해야 맞다.
"네가 잘못 한 그 것"은 하나의 의식(意識)이니, 그 정보부분(識)과
마음(意) 부분을 구별하기 부터 해야 한다.
"네가 한 그 것"은 [내]가 알고 있는 이 두뇌 속 기억인 정보(識)이다.
"(네) 잘못"은, 역시 [내]가 알고 있는 이 두뇌 속 기억인 정보(識)에
연결되어 있는 "잘/잘못" 이라는 판단하는 마음(判意)이다.
여기까지 정확히 이해하면 상대방인 [네]가 아는 것도 어디에,
어떻게 있는 무엇인지 정도는 쉽게 알 수가 있게 된다.
그러면 두 사람의 대화가 결코 "다람쥐 체 바퀴 돌듯" 하진 않으리라.
[내] 아는 것(이 두뇌속 意識)과 [네] 아는 것(그 두뇌속 意識)이 다른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지극히 정상이라고 알게 되니,
무엇이, 어떻게, 왜 다른지를 파악하려는 대화부터 필요하다는데 동의한
다면 언쟁이 아닌 상호 보완적인 대화가 가능할 것 이고,
그런 식의 대화요청에 상대가 동의하지 않거나 반대한다면, 그 어떤 대화도
역효과만 유발할 가능성이 농후하니 신속히 결별함이 현명하다.
특히 소위 건전한 [부부대화]가 아닌 백해무익한 "부부싸움"을 보노라면
그들이 스스로 얼마나 우매한 정신상태인지 알려고도 하지 못 한다.
하기사, 알려고나 할 줄 안다면 우매하다 할 수 없겠지.....
"무시했다니,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가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
"뻔할 뻔자인데 뻔뻔하게스리..."
"그 뻔하다는 근거를 왜 제시하지 못해?" 하면,
"그럼 무시 안했다는 근거부터 제시해라" 동문서답식도 아닌 반격에,
"무시했다고 주장하는 건 그대이지, 나는 무시 안했다고 주장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왜 입증해야 해?"
"무시했다는 내 말에 근거대라는 말이 무시하지 않았다는 말이쟎느냐?"
"거짓말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입증해야지, 거짓말 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하지 않은 사람이, 입증을 왜, 어떻게 할 수 있냐고!?"
이런 정도의 대화는 대화(對話)라기 보다는 대화(大火, 大禍)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둘 다 우매하기는 마찬가지다.
현명해 진다면 "참 바보스러웠었구나...."하고 깨닫겠지만......
사람들끼리 왜, 서로 주장하고 주장을 듣고 대답하는 대화를 하는가?
나의 주장을 관철하려는 이기심, 그 소아적(小我的) 발로일까?
서로의 의사를 대화로 소통함으로써 편 먹으려는 소승적 의도인가?
같은 인류로서, 같은 생명체로서, [대우주]의 일원으로서 조화를
이루기 위한 대승적(大乘的) 관점에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