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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認識)이 곧 존재(存在)", 맞지만 틀린 말 이다.

나 아닌 내 2024. 11. 13. 00:20

"인식이 곧 존재"라는 말이 있다.
"인식하는 그대로 존재한다"는 말 이다.
맞는 말 이기도 하고, 틀린 말 이기도 하다.

"인식이 곧 존재"라는 말을 다르게 표현하자면,
"인식이 없으면 존재도 없다"고 하게 된다.
그런 인식이 없으면 그런 존재도 없다는 뜻 이기도 하고.

이런 주장이 맞는 말인지, 아닌지 말 하려면 근거를 제대로 밝혀서 해야 한다.
여기서 반드시 검토해야 할 것은 "인식", "존재"와 "인식자"라는 말의 뜻 이다.
그 말의 뜻에 따라서 "인식이 곧 존재"라는 말이 맞느냐, 틀리느냐도 달라
지기 때문이다.

1) "인식(認識)" -이라는 두 글자- 의 뜻(두뇌 속 意識)이 무엇이냐?
[내](인식자) 앞에 등장해 있는 기억이나 상상인 정보(識)에 대(對)하여
[내]가 그렇다(그렇게 존재한다)고 인정한다(認)는 뜻 이다.

사람들(그 정신)은 대체로 제(自) 앞에 등장해 있는 거의 모든 정보(識)에
대하여 -그렇게(그 정보대로) 존재한다고- 인정하지만,
경우에 따라서 어떤 정보(識)는 이유를 붙여서 인정하지 않는(不認定할) 수도
있다.

"그럴리 없다", "믿을 수 없다", "인정할 수 없다", "인정하기 싫다"는 등등이
그 불인식(不認識) 이유이다.

예컨대, [갑이 말 하기를, 을이 도둑질을 하였다] 하는 소리를 병이
듣고 인식했다.

병이 그걸 인식하지 못했으면 그런 [사실]이 존재하는 줄 알 수가 없다.
[병이 (일단은)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은 엄연히 실제로도 [존재]한다.

그런데 정(丁)의 두뇌 속엔 그와 같은 일에 관한 정보(識)가 없어서
인식(認識)이니 불인식(不認識)이니 하는 일이 전혀 없다.

1). 여기서 주의깊은 독자님이라면, "사람이 인식하느냐 여하가 실제 [존재]
에 어떤 영향을 끼치길래 인식이 곧 존재라 하는가?", 하는 의문이다.

2). 나아 가 "실제로 [존재]하지만, 인식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단 말인가?",

3). 또, 실제로 [존재]하지 않아도 인식(認識)만 있으면 실제로 [존재]가
되는가?

이상 세 가지 의문을 단번에 해소할 수 있는 정답은 바로 [존재]와 "존재"를
구별하는 것에 있다.

[존재]라 함은, [실제로 있는 그대로인 존재]라는 뜻 이고,
"존재"는, "사람의 두뇌 속에 형성되어 있는 의식 그대로인 존재"라는 뜻 이다.
(넓은 뜻의 [존재]에는 두뇌 속 "존재"도 실제로 있긴 하니까 [존재]이다만)
따라서 "인식되는 존재"는, 두뇌 속 의식이지 두뇌 바깥의 실재(實在)가 아니다.

"인식되는 존재"란 말은, "인식되고 있는 존재(두뇌속 意識)"를, 두뇌 바깥에
있는 [실제 그대로의 존재]와 같다고 여겨지거나(同一示), 내지는 [실제 그대
로의 존재]라고 인정한다는(사실상 환상) 뜻 이다.

두뇌 속 "존재"를 두뇌 바깥의 [존재] 그대로의 반영이라고 아는 것을 인식(認識),
두뇌 속 "존재"가 두뇌 바깥의 [존재] 그 것이라고 여겨짐을 동일시(同一息)라 한다.
기억이나 상상인 "존재"에 울고, 웃고, 놀라는 일은 모두가 동일시 때문이다.

저 위에 예시한 병의 두뇌 속에 "갑이 말 하기를, 을이 도둑질을 하였다고 한 것"이
기억으로 있다가 떠올라 있을 때, 병이 그런 "존재"를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고
인식할 수도 있고,

"갑이 말 하기를" 부분은 무시된채 "을이 도둑질을 하였다"는
말에 해당되는 일이 [실제로 을에 의하여 저질러졌다](즉, 실제로 그런 일이 [존재]
했었다)고 인식되는 수도 있다.

"00신문에 보도되기로 아무개가 선거부정을 저질렀다"는 기사를 읽은 정보(識)에서
"ㅇㅇ신문에 보도되기로" 부분이 무시되면 "아무개가 선거부정을 저질렀다"는 기사에
해당되는 일이 실제로 [존재]하느냐에 관하여 인식, 불인식이 발생할 수 있다.(물론
무시도 포함하여)

결론적으로 [존재]는 '존재"될 수 없으며, "존재" 또한 [존재]될 수가 없다.
아무리 인식해도 "존재는 존재"일 뿐, "존재"가 [존재]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불인식(두뇌속 "존재"를 불인정) 해도, [존재]에는 영향이 없다.

마지막으로 "인식자(認識者)"는 그 사람 마다의 스스로이다.
[내]가 두뇌속 "존재(의식)"를 외부에 있는 [존재]와 같다고 인정하거나(認識),
[존재] 그 자체인 것 처럼 여겨짐(同一示)에 빠지기도 하는 주체이다.

[내]가 "존재"와 [존재]를 엄격히 구별하면 인식여부를 스스로 결정하고,
동일시에 빠지는 일은 없지만,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존재"와 [존재]라는 개념조차
없으니 .....

[내]와 [존재]의 사이(間)에, 의식(意識)이라는 거대한 바다(心海)가 있어서,
[내]와 [존재]를 혹은 연결하고, 혹은 차단하는 경게 기능을 한다.

육신의 오관(다섯 감각기관)으로 접촉된 것이 정보(識)로 바다에 입력되어
[내]게 알려지고([내]와 [존재]의 간접적인 연결기능),

[내 말]로 바다에 입력한 명령대로 몸으로 표현(표정, 발언, 행동)되어 [존재]
에 변화로 반영된다.(역시 간접적인 연결기능)

그렇지만, 심해 넘어에 있는 [존재계]로 [내]가 나갈 수 없고, 존재계의 그 어떤
[존재]도 심해를 지나서 [내]게로 올 수가 없다.([내]와 [존재] 사이(間)
경계의 차단기능)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은 거의 누구나 [존재]한다고 인식하고 살지만,
오직 두뇌속 의식으로만 "존재'할 뿐임을 아는 이 극히 드물다.

"존재 인식"이 [존재]를 아는 것 처럼 여겨지는 일이,
어찌 보면 인류에게 필요악(必要惡)이라 할만 하다.

그렇게라도 "존재"인식으로 [존재]를 알 필요에 활용할 수가 있으니 필요하다 할만
하고,
그렇게 아는 "존재"가 [존재] 그 자체와 양적, 질적, 효용에 악용되는 일이 적지
않으니 악(惡)이라 할만 하다.

그러니 [존재]를 제대로 알기 위하여 성실 근면해야 마땅하고,
제가 아는 "존재"로 [존재]를 제대로 아는 것 처럼 맹신되는 일이 없도록 겸손,
또 겸손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