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생각을 가져라,
좋게 생각해라.
나쁜 생각하지도, 갖지도 말라,
사람들끼리 내고 듣는 이런 등등의 소리를 드물지 않게 접하곤 한다.
이전에는 그런 말(소리) 그대로를 뜻 이라고 알았었기 때문에,
그게 무슨 뜻 이냐는 물음은 커녕 의문조차 없었다.
말(글도 같다)의 뜻(실질)이 말 소리(형식)에 없다는 것을 알고,
그 것이 어디에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고 탐구하기 시작하여
단어들의 뜻이 실려있는 사전이 아니라, 그런 말(형식)을 사용하는
사람의 두뇌 속에 의식(意識) 내지는 그 조합(造合)인 의사(意思)가
뜻(실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식(意識)중의 식(識) 부분을 뜻으로 표현하는 말이 서술어(述語),
의(意) 부분을 표현하는 말이 의미어(意語)라고 알고는,
그 것이 사람마다의 두뇌 속에만 있는 것 이기 때문에 사람들끼리
서로 비슷 내지는 같은 뜻인 경우도 있고, 서로 다르고 반대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 저절로 이해되었다.
고로 서로의 말 뜻이 다르면 다르다고, 상반되면 상반된다고 알고
그걸 어떻게 해결할지 대화로 풀면 어렵지 않지만,
나의 말 뜻이 맞다, 옳다는 편견, 아집에 빠지면, 그와 반대까지 아닌 다르
기만 한 남의 말 뜻은 틀렸다, 그르다 할 수 밖에 없다는 것도 이해되더라.
소위 "내로 남불" 식으로 언쟁이 발생하기 직전이나 발생해 있을 때,
그 중의 일방이라도 "나의 말 뜻은 이와 같은데, 너의 말 뜻은 그와 같다니
서로 다르구나, 다른 각자의 뜻 그대로 대화를 하거나, 대화를 포기하거나,
서로의 말 뜻을 합의로 단일화 하여 대화를 하자거나 제안할 수가 있고,
그 다음은 상대의 대답 여하에 따라서 대화의 계속 여부를 결정할 수도
있다.
말 뜻이 다른 사람들끼리 상대의 뜻을 틀렸다, 그르다고만 고집하는
사람과 더 이상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 또한 상대방과 같은 바보 정신이다.
이상은 "말 뜻이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의 대화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인,이 두뇌 속 "의사(意思)"의 표현인 글(형식) 이다.
이상과 같은 두뇌 속 의사(意思)를 만드는 과정을 "의사형성 하기",
"사고(思考)하기", "생각하기"라 하고,그렇게 형성된 결과물(?)을
내부의사(內部意思) 또는"사고", "생각"이라 하고, 그걸 외부로 (어떻게)
표현하려는 의사를 표현의사(表現意思), 표정, 발언, 행동등으로 표현된
것을 의사표시(意思表示)라 한다.
누군가로 부터의 어떤 "의사표시"를 접촉하면, 들은 그 사람의 두뇌 속엔
하나의 정보(識) 로 입력됨과 동시에, "좋은(好意)", "나쁜(惡意)",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의미없다는)" 이라는 세 가지중 어느 하나의
마음(意)이 반응으로 형성되어 그 정보(識)에 연결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상이 추상적, 일반적인 "좋은(好意) 생각(그 의사인 識)"의 정체이다.
구체적, 개별적으로 '어떤 생각'이 위의 뜻에 부합된다면 그게 구체적,
개별적인 "좋은(추상적인 뜻에 부합된다는 意) + 생각(어떤 의사인 識)"의
정체이다.
이 경우, 추상적인 뜻이 소위 "개인의 가치관"이고, 구체적인 것이 그
반영이다.
그러니 추상적인 뜻이 다른 사람들끼리는 구체적인 뜻도 다를 수 밖에 없다.
예컨대, "상사의 명령에는 무조건 복종해야 옳다"는 말에 "좋은 생각", "좋은
말"이라 하는 사람도 있고 "나쁜 생각", "나쁜 말"이라 하는 사람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 하는 사람도 있고, "그건 개별적 상황을 종합
적으로 살펴 본 다음에 판단할 일" 이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 글을 읽고도 마찬가지니, 필자는 당연히 "그러려니...." 할 뿐 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남으로 부터 받은 정보(그 사람의 의사표현인 생각=識)에
자기 두뇌 속에서 "좋은(好意)"이라는 마음이 생성되어 "좋은(자기 마음인意)
+ 생각(남의 의사인 識)"으로 합성된 복함적 단어가 "좋은 생각"의 뜻 이다.
그렇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좋은 생각"의 정체를 제대로 모른다.
특히, 남의 의사 그대로가 좋은 생각이라서, 좋은 생각이라고 알고 있는게
당연하다는 맹신에 빠져 있기 일쑤다.(나쁜 생각도 마찬가지)
남의 말 그대로에 제 마음(意)이 연결되어 "좋은(意) 말(들은 기억인 識)"이
되어 있는 것을 모르고, 남의 말 자체가 좋은 말 이라는 맹신에,
남의 표정, 행동이 아닌, 제 두뇌 속 기억(識)에 제 마음(意)이 연결되어 있는
것을 모르고 남의 표정, 발언, 행동이 나쁘고 싫어서 기분 나쁘다고 아는
맹신에 빠져있는 줄도 모른다.
그래서 좋은 생각을 좋은 생각이 아니라, 나쁜 생각이라 한다고 알고는
"가치관(추상적인 뜻)이 다르구나" 해야 할 일을, "내로남불"이라 다툰다.
이 글을 작성하는 이유와 목적도 하나의 의사, 사고, 생각이다.
모든 두뇌 속 의식(내부적 意와 욋적 정보인 識의 결합물?)이 그러하듯이,
좋은(나의 마음인 意)과 생각(남의 의사표시인 識)의 결합물인 "좋은 생각"도
그렇다고 알면, 두뇌 속 어떤 정보(識)에 -좋은, 나쁜도 포함되는- 어떤 마음(意)
을 연결할 것인지는 자기 내부에서 정해지니, 자기의 선택(자유)이고, 그로 인한
책임도 전적으로 자기에게 있음을 이해하기 쉽다.
반면에, 두뇌 외부(특히 타인)에서 획득된 정보(識)가 실제 [사실 그대로]라고
동일시 되면, 그 [사실 그대로]가 좋아서, 또는 나빠서 (예컨대) 기분 나쁘고
불쾌 하다는 맹신에 빠지게 된다. (이상이 이 글을 작성하기 까지의 이유(理由)
이다.
지금 부터는, 자기 두뇌 속 정보인 식(識) 중의 어떤 생각(意思)에 "좋은/나쁜"
이라는 마음(好議/惡意)이 연결되어 있으며, 연결되어 있을 필요(반드시 소요)가
있는지를 미래(결과) 지향적으로 검토해 볼 차례이다.
대체로 거의 모든 "좋은 생각"이나 "나쁜 생각"이 어떤 이유나 목적이 있어서
[내]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그런 생각이 있는 줄조차 [내]가 제대로
모르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이 밝혀지리라.
특히 "좋다(또는 나쁘다)"는 생각이 누구의, 어디의, 무엇에, 어떤 필요가
있어서 "좋다", "좋은" 하는지 그 의도(意圖=마음 설계도)를 전혀 모르거나,
아예 "의도"니, "목적"이니 하는 게 없는 것이 대부분임도 알게 되리라.
그저 "그 것(자체)이 좋으니까 좋다할 수 밖에, 그럼 좋은 것을 나쁘다 할까!?"
하는 푸념에 그치기 일쑤다.
그 결과, [자기의 인생에 필요하고 유익한 것]을
"좋다, 가까이 있게 실현하자" 하기를 할줄 몰라서 못 하거나,
심지어는 "나빠, 싫어" 하지 않기를 몰라서 못 하는 일이 허다하다.
반대로, [자기의 인생에 불필요하거나 유해한 것]을
"필요없다, 나쁘다"고 싫어할 줄 몰라서 못 하고,
심지어는 "좋아, 갖고싶어" 하지 않기를 몰라서 하는 일도 허다하다.
자기 인생에 필요 유익한 것만 그 적정한 정도로 좋아(好意)하고,
자기 인생에 불필요한 것만 필요없다(不要意) 하고,
자기 인생에 유해한 것만 그 정도만큼 "나빠" 싫어만 한다면,
인생이 얼마나 단순하고, 쉬워지고, 수월해질지 가늠하기 어렵지 않다.
이상이 이 글을 작성하는 목적(目的)이다.
물론, 필자의 의도를 "좋은 생각"이라 하건, "나쁜 생각"이라 하건 그
선택의 자유와 책임은 전적으로 읽는 이의 몫이지만, 글쎄올씨다......
[사족] 하나,
위의 "자기 인생"에서 "자기"의 뜻은 개념화 하기에 따라서 미립자
하나 보다 작은 '나' 에서 [대우주]까지로 축소 또는 확장이 가능한
개념이고, 여기(이 글)에선 "인류공동체의 일원" 이라는 정도의
대승적 견지에서 사용한 뜻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