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의(意)"는 사람의 두뇌 속에 형성되어 있는 -비교, 평가, 판단, 선택, 결정등-
상대적인 언어 일체라는 뜻 이다.
어떤 정보(識)를 딴 정보(識)와 상대적으로 비교하거나,
어떤 정보(識)를 평가기준(識)을 적용하여 상대적으로 평가하거나,
어떤 정보(識)를 판단기준(識)에 비추어서 판단하거나,
어떤 정보(識)를 선택기준(識)에 비추어서 선택하거나,
어떤 정보(識)를 결정기준(識)을 적용하여 결정하거나
하여서 형성되는 말 모두가 두뇌 속 상대화 작업의 산물인 의미어(意)이다.
어떤 정보를 서술하는 절대적 언어인 서술어(語)와 다르다.
서술어와 의미어를 다음과 같이 비교적으로 예시해 본다.
- 눈 앞에 있는 탁자에 빨간 사과 열매가 하나 있다(서술어)
- 눈 앞 "가까운/먼" 곳에 "잘/덜" 익은 사과 열매가 "정갈하게/산만하게"
"놓여/잡혀" 있다.(" / " 으로 되어 있는 부분이 의미어 이다.)
두 가지 말의 뜻도 다르다.
서술어의 뜻은 그 하나, 하나의 정보(識)가 서술어가 표현하는 뜻 이고,
의미어의 뜻은 "상대적 작업을 거친 정보(識)에 형성된 상대적 언어(意)"
가 그 뜻 이다.
예컨대, 코끼리가 뭔데? 하는 질문은 코끼리(이름)에 연결된 정보(識)를
서술해 달라는 뜻이고,
코끼리는 사람에게 어떤 동물인데? 하는 질문은 코끼리를 사람의 관점에
비추어서 평가, 판단하여 달라는 뜻 이다.
당신의 키에 관해서 말해 달라는 말에,
이 몸의 키는 174 이다, 하는 것은 서술어이고,
내(자기) 또래에 비하면 키가 "큰/작은" 축에 속한다, 하는 것은 의미어 이다.
그런데 사람의 두뇌 속에는 그렇게 적지 않은 의미어가 어지럽게 형성되어
있다가 조건 반사적으로 기계적, 자동적으로 [내]게 들린다.
"큰일이다", "큰일 났다", "어쩌면 좋아", "걱정이다", "고민이다" 등등의
말(당연히 상대적인 언어, 의미어, 意즉, 마음) 이다.
[내] 스스로 만든 말이 아니고,
[내] 스스로 통제 한적은 커녕 통제할 줄 조차 모르는 말이 대부분이다.
그 대부분이 이 사람 내지는 주변 사람의 삶에 필요하고 유익한 마음이기
보다는 불필요하고 유해한 마음이다.
그래서 악마의 마음과 같다고 마의(魔意)라 하고자 한다.
반면에, [내] 스스로 주변을 널리 포함하여 이 사람의 삶에 어떤 것이
필요 유익할까를 기준으로 삼아서 형성한 마음이 있을 수도 있다(물론,
내 스스로 만들지 않아서 없을 수도 있다)
또, 위의 마음(魔意)을 [내] 스스로 고치거나, 바꾸거나, 버리는 방법으로
통제할 수도 있다.
그런 과정으로 형성해 놓은 마음을 천사, 신의 마음과 같다고 신의(神意)라
하고자 한다.
우리가 확인해야 할 일은
마의(魔意)는 그 어떤 노력이 없이도 이미 거의 모든 사람들의 두뇌 속에
차고 넘치고 있는 반면에,
신의(神意)는 극히 희소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런 게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있으니 무엇이 어떻게 만들려 하겠는가?
그런데 [내] 스스로의 본분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탐구해 본다면,
내가 바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고, 마땅히 해야 하는 신(神)이구나...
지금껏 악마의 속삭임(魔意)에 속아서 귀신놀음에 빠져 있었구나.....
하는 식으로 참회하고 대오각성 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남을 상대로 "나는 신, 너는 악마"라 한다면 그야 말로 바보 아니면
악마이지만, [내] 스스로 깨달음(自覺)에 확고히 머물면서 두루
조화를 이룸에 기여하기가 그리 어렵고 힘든 일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