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말 하자면
첫째, 그 사람의 두뇌 밖에 있는 그 무엇도 "무겁게나 가볍게", "크게나 작게",
합쳐서 "중대하게나 경미하게" 존재하지 않다.
그저 대우주의 일부로서 그 있는 그대로 있을 뿐 이다.
사람이 따로 무게나 크기를 측량할 순 있지만, 그리 한다고 무거워 지거나 가벼워지는
일, 커 지거나 작아지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상대적으로 비교하지 않으면)
단적으로, 이 세상 그 어디의 무엇에도 무겁거나 가벼운 것, 크거나 작은 것은 추호도
없다.
둘째, 그 사람의 두뇌 속에 있는 의식적 구조물중 어떤 정보(識)에는 "무겁다, 무거운"
또는 "가볍다, 가벼운" 이라느니, "크다, 큰" 또는 "작다, 작은" 이라느니 하는 상대적
언어(意)가 부가(연결)되어 있는 것이 더러 있다.
그 둘이 '상대적 언어(意) + 정보(識)'로 결합되어 있는 것을 하나의 의식(意識)이라 한다.
"무거운(意) 것(識=사람, 사물, 일 등)", "작은(意) 것(識)" 이라는 의식이다.
셋째, 종합적으로,
사람의 두뇌 속에는 "무거운 것"/ "가벼운 것", "큰 것"/ "작은 것"이라는 의식이 드물지
않게 있지만,
두뇌 바같에는, 두뇌 속 온갖 '것(識)'에 해당되는 근거(사실)들이 있지만, 그 어떤 사실에도
두뇌 속 -크다/ 작다, 무겁다/가볍다 등- 상대적 언어(意)에 해당되는 근거는 추호도 없다.
넷째, 사람들(그 정신)이 두뇌 바깥에 있는 무언가를 감각적으로 대(對)하는 순간에,
이건 무겁고 저건 가볍다거나 이건 크고 저건 작다거나 하는 말을 하는 근거는 두뇌속
상대화 작업의 산물인 의식계의 투사(投射), 투영(投影) 때문이다.
다섯째, 이상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 두뇌 속에 있는 것(識)이나 두뇌 바깥에 있는
무언가를 특정(識化)하여 놓고 상대화 작업을 하느냐, 그치느냐는 물론이고,
그 작업을 어떻게 시작하고, 작업내용을 고치고, 바꾸고, 작업결과물(?)을 무효화 하는
일도 그(정신) 스스로의 완전한 자유와 전적인 책임으로 할 수가 있게 된다.
예컨대, 이 세상 거의 모든 사람이 "중대한(意)그 일(識)" 이라고 알고 있는 일을
"경미한(意) 그 일(識)" 내지는 "그냥(어떤 意도 없이) 그 일(識) 이라고 알 수도 있다.
마찬가지도 그 반대로도 쉽게 가능하다.
이상을 이해하지 못 하게 되면,
제 두뇌 속에만 있는 '무거움과 가벼움', '큰과 작은' 등등 상대적인 마음(意)이
두뇌 밖 사실계에 그 근거가 있다는 혼동에 빠지기 때문에 그런 마음(意)을 스스로
다스릴 수가 없게 된다.
현명한 정신은 남들이 중대하다고 아는(보는) 것도 경미하다고 의식하거나,
그런 마음없이(識만으로) 볼 수도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지구도 대우주에 비하여 극미하다고 볼 수도 있고, 미립자 하나도 대우주의 일부라고 크게
볼 수도 있다.
돈 천원도 많다고 보거나, 수 억원도 적다고 볼 수도 있다.
우매한 정신은 남들이 경미하다, 사소하다, 별거없다고 하는 것도 제 두뇌 속에 "중대한(意)
그 것(識)이라고 의식되어 있으면 "중대한 것을 어찌 중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냐고!?"
하면서 길길이 저항하게 된다.
문제는 그런 시비, 가부 논쟁에 어떤 목적적 효율이 있는가 여하에 있다.
단적으로, 자기와 상대, 그리고 타인들의 실생활에 어떤 -도움 또는 해로움- 파급효과가
어느 정도나 있는가 여하이다.
[인생에 중대한 영향이 있으니까 중대한 일 이라 한다]고 해야 하고,
[인생에 경미한 영향밖에 없으니까 경미한 일이라 한다"고 해야 하고,
[인생에 영향이 거의 내지는 전혀 없으니 무의미한 일이라 한다"고 해야 한다.
나이 70을 넘어선 지금에도 까마득한 옛 기억을, 엊그제 내지는 아직도 있는
"중대한 일(意)"이라는 마음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갑남을녀 대부분이
예외이기 과연 쉬울는지....
평소 친하게 지내던 두 사람이 "이번 선거에 누굴 찍을까"를 놓고 "김문수",
"이재명"으로 다르다고 원수처럼 으르렁대는 86세 노인네를 보았다.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