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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 객관, 객관적 주관.

나 아닌 내 2010. 1. 20. 16:02

먼저 여기에서 사용할 객관과 주관이란 말의 뜻 부터 정해 두고자 한다.

주관 : 내 두뇌 속의 의식(내면 : 마음)을 지칭한다.

객관 : 내 두뇌 바깥에 있는 사실(외면 : 세상)을 지칭한다.

 

위의 뜻 그대로의 주관과 객관은 결합은 커녕 연결조차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려고 하면- 알 수가 있다.

환언하자면,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으면 누구도 알 수가 없다는 뜻 이기도 하다.

그래서 발생하는 일이 주관과 객관이 마치 결합된 것 처럼의(환상적인)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 이다.

그렇게 발생하는 환상이 주관적 객관, 객관적 주관이라는 것 이다.

 

주관적 객관이라고 함은, 주관이 객관에 투사되어서 객관이 주관처럼 알려지는 환상이다.

"잘 생긴 얼굴을 가진 사람이 좋다"는 주관이 상대방에 투사되어 "잘 생긴 사람" 또는 "못 생긴 사람" 처럼 보이는 현상이다.

 

객관적 주관이라고 함은, 객관이 주관에 연결되는 것 처럼의 일이 발생하여 주관이 객관인 것 처럼 여겨지는 환상이다.

저 사람의 얼굴 생김새(객관)가 잘 생겼다(주관)"는 마음이 형성되어 알려 진다.

 

객관적 주관이나 주관적 객관이나 말의 순서만 다를 뿐, 실제로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주관적 객관이라고 하면서 그리 볼 수도 있고, 객관적 주관이라고 하면서 그리 볼 수도 있다.

다만, 그 어느 한편을 기준(원인)으로 삼게 되면 딴 하나는 대상(조건)으로 여겨지게 되는 -실질상 차이없는- 차이가 생긴다.

"그 것 때문에" 하거나(하다가), "내 마음 때문에" 하거나" (할 수도) 있으므로.

 

그런데 어떤 대상(객관이건 기억, 상상과 같은 준객관이건)에 관한 마음(주관)을 알고 다스리고 사용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정신으로서는 이 두 가지를 반드시 따로 분리하여 파악해야만 -환상적 연결의 상태로 보다 훨씬- 그걸 다루기가 쉽다.

대상이 문제냐, 핵심이냐, 다루기가 가능하고 효율적이냐?

내 마음이 문제냐, 핵심이냐, 다루기가 가능하고, 효율적이냐를 따로 검토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걸 따로라고 알지 못 하면(주관적 객관, 객관적 주관으로 착각하면) 가능한 방법을 알지 못 하여 없는 것 처럼, 불가능한 환상도 있을 수나 있는 것 처럼 여겨지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오래 전에 사망한 시어머니를 미워하는 마음이 지금도 남아서 괴로움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 당시의 구박하던 시어머니"는 지금은 기억일 뿐 존재하지 않는다.(객관이 없다)

"그 당시의 원망하고 미워하던 마음"은 지금도 여전히 기억으로 남아 있다.(주관이 있다)

 

이걸 제대로 파악하면 그 주관이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알기 쉬우니 저절로 무시된다. 

주관이 무시되면 그와 이어 져 있던 기억도(객관이 아니라고) 저절로 무시된다.

그리 되고 나면 그런 기억(미운 시어니)이 떠 오르는 일이 별로 없게 되고, 어떤 동기가 발생하여 떠 올라도 쉽게 가라앉아 버리거나. 새로 깨달은 마음을 동원하여 가라앉게 만들기가 쉽다.  

 

그런데 그 주관적 이미지(미운 +시어머니)의 정체를 제대로 모르면 어디서 부터 어째야 할지를 알기 어렵게 된다.

그 시어머니가 살아서 어떻게 해 주거나, 자신이 그를 어떻게 해야만 문제가 해소된다는 함정에 빠져서 헤매게 된다.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