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쓰고자 하는 "(술수(術數)"라는 단어의 뜻은 사전적, 통용적인 것이 아니다.
"수(數)를 사용하여 부리는 기술(術)" 이라는 직역(直譯)에 가까운 뜻 이다.
수(數)는 양을 표현하는 특수한 기호인 말(言語, 文字) 형식의 하나이다.
읽으면 나와서 들리는 소리를 "수"라 하고, 써 놓으면 보이는 문자를 숫자(數를 나타내는 기호)라 한다.
이 수(數)는 사람이 두뇌 속에서 만들어서 두뇌 바깥에 표현하는 말과 글 형식말고는 어디에도 그 실체가 없다.
우리가 "만원권 열장"이라 할 때의 "열" 또는 "10"이 "수"라고 알지만, 그 수는 지폐 그 어디에도, 추호의 낌새로도 실체가 없다.
시계 안에나 겉에 "시(時)"니,"시간(時間)"이니 하는 것이 전혀 없듯이, 모래알 같이 많은 것 중의 그 무엇에도 수(數)는 없다.
시, 시간이라 써 놓은 글자 어디에도 시, 시간이 없듯이.
글자 그대로 무수(無數)하다.
두뇌 바깥에는 수(數)가 추호도 없고, 두뇌 속에만 수(數)라는 개념이 있고, 그 것이 두뇌 바깥의 무언가에 적용(適用)되면,
마치 그 것이 그런(적용된) 수(數)로 있는 것 처럼 투사(投射), 투영(投影)되어 알려져서 그런 수가 존재하는 것 처럼 여겨진다..
그 어떤 개체를 보고, 엄청나게 많은 수를 만들어서 투사하기도 하고,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단 하나의 수로 통합적으로 투사하기도 한다.
지구를 하나(單 1數)로 투사해서 보기도 하고, 그 하나로 보던 지구를 모래알 보다 더 작은 원자, 미립자로 계량화 하여 다수로
투사해 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숫자를 고정해 놓고, 거기에 "많고 크다(多大)"라는 평판(意)을 붙여서 투사하기도 하고,
"적고 작다(少小)"라는 평판(意)을 붙여서 투사하기도 한다.
그렇게 투사하면, 그렇게 투영되어 알려진다.
예컨대, "300만원" 이라는 봉급액수를 고정해 놓고 "내가 한 수고에 비하면 너무나 엄청나게 크고 많은 액수"라는 마음을 통하여 보거나,
"내가 한 수고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것 없이 작고 적은 액수"라는 마음을 통하여 투사, 투영되어 알려지기도 한다.
이런 일을, 내가 스스로 부린다면 술수(術數)라 할 수 있지만,
내가 모르는 사이에, 두뇌에서 기계적으로 형성되어 내게 알려진다면, 두뇌가 부리는 일종의 마술(魔術) 같쟎은가?
또, 누군가가 교묘하게 내 두뇌 속에 그런 말이 입력되게 하여 그 멋대로 장난을 친다면 일종의 요술(妖術) 같쟎은가?
특히 흔히들 일심동체니, 자타일체니 하는 부부관계의 쌍방이 그 "수(數) 틀리면" 남남보다 더 미운 적대적이 되기도 한다.
나는 그대에게 이렇궁 저렇궁 너무나 엄청나게 중차대(重且大)하게 많이 주었는데, 너는 내게 실망만 주었다"고 서로 똑 같은 소리로 다투는
것을 더러 본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이 "나는 네게 실망할 일을 아주 극히 소소(少小)하게 주었는데, 너는 내게 엄청나게 다대(多大)하게 주었다" 하면,
그 상대방이 "그건 바로 내가 할 소리다" 하면서 대립한다.
결국 살면서 주고 받은 것이 있은들, 그게 그 것이지 많다 한다고, 적다 한다고 그 수(數)가 그렇게 달라지는 것 아니니,
"좋은 것을 내가 준 것은 많고 받은 것은 적다" 한들, "나쁜 것을 내가 준 것은 적고 받은 것은 많다"고 서로의 "수(數) 틀리다"고
시비한들 무슨 효용이 있으리오.
그런데 사람들에게 물어 보고 확인할 것도 없이, 자기 두뇌에 말을 걸어서 질문해 보면 단번에 알 수가 있다.
"너는 남편(아내)에게 받은 게 많냐, 준게 많냐?"고,
"너는 남편(아내)을 기쁘게 한게 많냐, 남편이 너를 기쁘게 한게 많냐?"고,
"너는 남편(아내)을 원망하는게 많냐, 고맙게 여김이 많냐?"고.
그 "수(數) 놀이"를 능수 능란하게 하여 자기도, 타인도 기쁘게, 즐겁게 살기에도 아까운 인생이거늘,
무엇이 부리는 지도 모르는 마술같은, 요술같은 수 놀이에 속아서 근심, 불안, 원망, 분노에 휩쌓여 살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