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의 보편적 상식이라는 것에 몇 가지 이의를 제기해 보이고자 한다.
첫째는 "시간(時間)"이라는 것이 -두뇌 속 의식이 아닌- 실제로 존재한다는 상식이다.
때(時)라 칭하는 것이 있다고 보고, 그 사이(間)를 시간이라 하는 것이 상식이다.
예컨대, 시계의 초침이 12에 있을 때(時), 5에 있을 때(時)의 사이(間)를 5초의 시간(時間)이라고 하는 상식이다.
그런데, 오관(五官)중의 그 무엇으로도 시(時)라는 것을 접할 수가 없고, 특히 독립된 점(點)으로 있는 시(時點)를 발견할 수가 없다.
굳이 시(時)가 있다고 한다면, 추호의 끊어짐도(그러니 그 사이란 것도) 없이- 오직 하나로 이어 져 있는- 절대의 시(時)가 있을 뿐 이다.
모든 물질의 존재바탕(터전)인 본래의 텅빔(太虛), 추호의 점(空)도(그러니 그 사이라는 공간도) 없는 절대의 허(虛)만 있는 것 처럼.
절대의 시(時) 위에 하나의 점을 짝는게 인위적인 시점(時点)이고, 그 싯점들 사이를 시간이라 하지만, 그건 인간이
그 두뇌 속에서 만든 개념적 산물이고 두뇌 바깥에는 그 개념적 투사와 투영인 시점, 시계, 시간이 존재할 뿐 그 이외의 실존하는 시, 시간도 없다.
해 뜨는 "때", 5시 정각인 "때" 보거나 만지거나 그 어떤 방법으로라도 접할 수 있는가?)
시계의 겉이나 속 에서 "시", "시간"을 보거나 만지거나 그 어떤 방법으로건 접할 수 있는가?
공간도 마찬가지다.
태허(太虛)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안의 극히 작은 일부인 지구에 어떤 분리된 지점(地點)들이 있고, 그 지점과 지점의 사이란 것이 있던가?
아니면, 사람이 제 두뇌에서 임의로 정하여 지점이라하고, 그 것들 사이를 공간이라 칭하는 개념적 공간과 그 투사, 투영이 있을 뿐인가?
어쨌거나, 그 누구도 살아있는 동안에 [지금 그대로]만으로 산다.
지금이 아닌 0.0001초도 과거나 미래로 가서 살 수가 없다.(오직 지금만 있을 뿐, 과거나 미래가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대로가 아닌 다르게는 추호도 살 수가 없다. (오직 그대로만 존재할 뿐, 다르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아는 "지금 그대로"는 여기서 말 하는 [지금 그대로]와 너무나 다르다.
지금은 과거와 미래의 사이인 현재라는 뜻 이다.
그대로는 변하기 이전과 변할 이후를 제외한 현존이란 뜻 이다.
조용히 검토해 보시라.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이 사람의 두뇌 속 이름(名)말고 실체가 있는가, (두뇌 밖에 흔적이나 기미로라도 있던가)
이전의 상태, 현재의 상태, 이후의 상태란 것이 두뇌 속 기억이나 상상말고 실체가 있는가,(두뇌 밖에 실제로 졵재한던가)
사람의 두뇌 속에 절대의 시를 논리적, 선험적(先驗的)으로 의식화 하지 않는 한 그걸 알 길이 없다.
추호의 멈춤도 없이 흐르는 존재계 또한 그렇다고 의식화 하지 않는 한 그걸 알 길이 없다.
두뇌속 개념틀인 "시간, 공간 속에 순간마다 고정적인 존재"로 의식된 것만 알면 [지금 그대로]를 알 수가 없다.
[지금 그대로]를 제대로 모르면, [지금 그대로]에 맞춰서 순조롭게 살 수가 어렵거나 없다.
있지도 않는 과거에, 미래에다 원망이나 미련, 욕망을 걸고 있으니 유일한 [지금 그대로의 삶]이 과연 어떻겠는가?
다, 그대 자신의 자각과 지혜발휘 여하에 달려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