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필요한 그 무엇"이 문제로 되는 경우는 그 것이 실효적 사용이 가능하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효적 사용이 가능하게 실현되어 있는데 그걸 문제 삼는 경우는 있을 수가 없다.
가상(假想)으로라도 그런 실효적 사용이 어렵거나 불가능한 일이 두뇌 속에 형성되어 있어야 소위 "조심, 주의할 문젯거리"가 된다.
"필요한 그 것"은 있으면서 없다는 기괴한 양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두뇌 속 상상으로는 "필요한 그 것(意識)"으로 있고, 두뇌 바깥에는 그에 해당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눈 앞에 있는 물건이라도, 내 두뇌 속엔 "내 소유가 되기 바람(假想)" 으로만 있을 뿐, 내 소유로서는 없으니까.
그래서 "필요한(意) 그 것(識"이 해결이나 해소해야 할 -마음(意) 또는 실현(識)이라는- 문제가 되는 것 이다.
필요하다는 마음(意)이 없거나, 그 것이 있게 되면 문제가 남아 있을 수 없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문제로 계속 남아 있게 된다.
따라서 모든 문제의 해답은 두 가지 방향에서 선택적으로나 종합적으로 찾거나 만들 수가 있다.
마음을 어찌 할까, 현실을 어찌 할까를 선택적으로 검토할 수가 있고,
마음과 현실을 종합하여 해답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가장 먼저, 현실을 변화케 할 방법을 검토해 본다.
첫째, 객관적으로 가망성이 있는가, 없다면 마음(意)으로 문제의 방향을 돌린다.
둘째, 자기의 능력으로 가능성이 있는가, 없다면 역시 마음(意)으로 문제의 방향을 돌린다.
셋째, 투입과 산출을 비교하여 효율성이 어느 정도인가, 없거나 [마이너스]라면 역시 마음(意)으로 방향을 돌린다.
다음이 "필요하다"는 마음(意, 意慾)을 재검토 해 본다.
가망성이 없는 것 이라면, 필요하다는 마음이 가소롭지....(안 되는 것을 필요하다니...)
가능성이 없는 것 이라면, 필요하다는 마음이 불필요하지...(못 하는 것을 하고싶어 하다니...)
가당성이 없는 것 이라면, 필요하다는 마음이 웬수지....(실속이 없고 해롭기만 한 것을 하려 하다니...)
사람들이 안고, 겪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이 제대로 이해하고 나면 너무나 터무니없는 바보짓 때문이다.
현실(실현)로 어찌 할 수가 없는, 오직 마음(意)만을 다스려서 해소해야 할 문제를, 거꾸로 -안 되는, 못 하는, 하면 안 돼는- 현실이
문제라고 오인,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단히 하나의 예를 들면,
도저히 육체적, 물리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야 말로, 가장 쉽게 해소할 수 있는 지극히 간단한 문제이다.
그 해답이 "문제 아님"이라는 선언 하나로 필요, 충분하기 때문이다.
문제 아닌 문제, 즉 사이비 문제이니 -문제가 없는데- 무슨 해답이 있겠는가?
그렇지만, 문제가 아니라고 알지 못 하고 문제라고 알고 있으면, 그로선 문제가 아닐 수 없기도 하다.
그래서 "문제 아님"이라고 깨달아서 선언할 필요가 있고, 오직 그로써 충분하다.
"그리운 사람을 못 만나서 괴로운(愛別離苦) 문제"인 것 같지만, "만나지 못할 사람을 그리워 하다니....문제 아님",
"미운 인간을 혼내주지 못해서 괴로운(怨憎會苦) 문제"인 것 같지만, "혼내지 못할 사람을 미워하다니...문제 아님",
"바라는대로 안 되어서 괴로운(求不得苦) 문제"인 것 같지만, "안 되는 것을 바라다니...문제 아님" 이라고 선언하기가
진실로 복잡하고, 어렵고, 힘들고, 손해라서, 못 마땅하고, 하기 싫은가?
우매하면서, 우매한줄 모르고, 딴 에는 똑똑하다는 맹신에 빠져있지 않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