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당장은 안 만날 수도, 만날 수도 없는 사람을......

나 아닌 내 2020. 2. 29. 10:35

지금 당장에 만나고 있는 사람을, 지금 당장에 만날 수는 없다.

이미 만나고 있는데, 무슨 수로 (또, 따로) 만나리오.

해어지지 않는 한.


지금 당장에 만나고 있는 사람을, 지금 당장에 안 만날 수는 없다.

지금 만나고 있는데, 무슨 수로 안 만나리오.

역시 헤어지지 않는 한.


고로,

지금 당장에 만나고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거나, 만나기 싫다 한다면 너무나 이상(異常)하다 해야 정상(正常) 아닐까?

그런데도, 실제로는 그런 일이 예사로 일어나고 있으니....


바로, 사람의 두뇌 속에서 벌어지는 일 이다.

두뇌 속에 아는 일을 하는 내(주체, 자신)가 있고, 그 앞에 "보기 싫은(意, 마음, 주관)그 사람(識 , 기억, 객관)"이 떠 올라 있다.

바로 [내가 지금 알고있는 보기싫은 그 사람]이다.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외도 아니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보기싫은 그 사람"이 성립되려면, 내(주체)와 대상(意識)이 지금 만나고(對하고) 있어야 한다.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을 -먼저 헤어지기 부터 하지 않은채로- 지금 만나려는 일 이나, 지금 안 만나려는 일 이나

불가능한 일 이다.


그런데도, 왜 이런 해괴망측한 일이 발생할까?

바로 내(그 사람의 정신) 자신이 -새벽 안갯속 처럼- 우매(愚昧)하기 때문이다.

한편(두뇌 속)으로는 그 사람을 만나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두뇌 바깥)으로는 그 사람과의 만남이 없음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애매모호하게

알기 때문이다.


내(그 사람의 정신) 자신이 위와 같은 양면을 정확히 확실히 안다면 "만나고 싶다"거나,  "만나기 싫다"는 마음에 빠지지 않을 것 이다.

두뇌 속의 일이니, 당장은 두뇌 속에서만 정리함이 필요하고 충분하기 때문이다. 

바로 "보기싫은 그 사람" 이라는 내 대상에서 "객관적 기억인 "그 사람(識)"은 젖혀두고 "보기싫은" 이라는 마음(意)만을 대상으로 정리하면 된다.


"보기싫다"는 마음(意)을, 그 상태로만 두고 나중에 그 사람을 만나던 말던 "상관치 말자"고 하거나,

"보기싫다"는 마음(意)을 그럴만한 타당한 이유나 자기의 삶을 보호하려는 목적에 비추어 평가, 판단하여서,

내 스스로 -그러자 또는 그러지 말자고-  효율적인 마음으로 결정함이 필요하고 그로써 충분하다.


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못 하면 그게 바로 고민, 번뇌, 불안, 두려움의 싹이 된다.

대체로 "보기싫어 할 실익은 커녕 백해무익한 마음이었구나...." 하고 수긍하기 어렵지 않는 일 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