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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다루기(다스리기 포함)가 왜 어려울까?

나 아닌 내 2021. 1. 2. 10:48

마음을 그 따위로 쓰다니..

마음 좀 잘 써라.

이런 등등의 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고 듣는 사람도 있다.

 

(내가) 마음을 어찌 쓴다고 그래 !?,

(내가) 마음을 잘못 쓰는게 뭔데 !?

그런 류의 조언인지, 충고인지, 비난인지.... 소리를 들은 사람의 불만스런 반응이다.

 

남 에게 그런 소리를 내는 사람이나, 남으로 부터 그런 소리를 듣는 사람이나 다 같은 게 있으니,

남 에게 그런 소리 하는 사람도, 남으로 부터 그런 소리를 듣고는 그렇게 불평만 할 뿐이라는 점 이다.

왜 그럴까?

 

그런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면 뭐라고 답할까?

첫째, 마음을 다루어야(다스려야) 한다는 그대의 정체가 무언지 아는가?

둘째, 그대가 다루어야 한다는 그 마음이 무언지 정체를 아는가?  

셋째, 그대가 알고 있는 마음 중에, 그대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그저 그런 마음이 (알려져) 있어서 그런 줄 아는 것이

과연 몇%나 되는가?

넷째, 그대 스스로 마음을 새로 만들어 보자, 기존의 마음을 고쳐 보자, 바꾸어 보자, 버리자고 시도해 본 적이 있는가?

 

첫째의 질문에 "내가 어찌 내 자신을 모를 수 있는가, 너무나 잘 알지.." 하는 사람은,

  "내가, 내 아닌 것을, 내 자신이라고 착각, 혼동에 빠져 있다"고 고백하는 줄도 모르고 고백하는 것과 같다.

아는 자 스스로(自, 주체)를 모르는 대신에, 알려지는 대상(주로 "나"라는 이름의 意識이니 내겐 他, 객체이다)을

내 라고 착각, 혼동에 빠져있는게 확실하니까.(물론,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착각과 혼동에 빠져 있으니...)

 

"내가 무엇인지 안다"고 여기면 착각이고, 내가 무언지 전혀 모르면 내가 무얼 해야 하는지 어찌 알겠는가?

그러니, 마음을 다스려야 할 주체가 "있으나 없는 것" 처럼이니....

 

둘째의 질문에 "마음이 마음이지" 하거나, "기억이나 상상이 마음이지" 하거나, "좋다, 싫다가 마음이지" 하거나,

"그리움, 미움이 마음이지" 하거나, "허고싶음, 하기싫음이 마음이지" 하는 식의 대답을 하는 사람은 모래판을 모르고, 모래알 하나, 하나만을 모래판이라고 아는 것과 같다.

 

모래알을 모래알 이라고도 모르고, 그 한 개를 안다고 모래의 본질과 전체를 안다고 오인하고 있는 사람이 모래를 어찌

다룰 수 있겠는가?

다스려야 할 대상을 모르면서, 엉터리로 알거나 모르는 대상을 어찌 다룰 수 있겠는가?

 

셋째의 질문에 "그런 마음이 많다, 어쩌면 거의 다 그런 것 같다"고 하는 사람이라야

그런 마음의 정체를 알려고 시도하게 되고, 그런 줄 모르면 "모르는 것을, 모르는 줄도 모르고, 아는 줄 아는"

기괴한 앎에 빠진 것 이니, 모르는 마음을 어찌 다루리오.

 

넷째의 질문에 "그런 적이 없었던 것 같다"고 답하는 사람이라야, 지금부터라도 그 일을 할 수가 있고,

"그래 봤지만 안 되더라"고 답하는 사람은 "하지도 못 하고 한 줄" 오인에 빠져 있으니 달리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이상 네 가지 문답을 제대로 거치고 나면 마음 다스리기의 어려움을 해소할 준비가 갖춰진다.

1. (마음을 다스릴) [내(주체,自)가 무엇일까?

2. (내가 다스릴) [마음(意識 또는 意)]이 무엇일까?

3. 내가 만든 [내 마음(제8自意)], 내가 만들지 않은 "나의 마음(제7 心意)"을 어떻게 구별할까?

4. 내가 다룰 수 있는 마음은 무엇이고, 그 수단과 방법은 무엇일까?

이상 네 가지 문답을 거치고 나면 마음 다루기는 너무나 단순하고 쉽고 수월해 지고 효율도 지극히 높게 된다.

 

이상 질문에 대한 답의 핵심은 이미 누차에 걸쳐 여기(이 [불로그] )에 실려 있다.

독자님 스스로 증득할 기회로 남기고자 한다.

필요하다 여겨지면 나중에 2탄으로 정리하기로 유예해 놓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