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하는 일이 참으로 많다.
그 하고 많은 일을 함에 있어서
1. 무 언가를 써서(用), 쓰일 데(要)에, 성과를 주되(給), 그 일을 효율적(능률과 효율이 높은 效)으로 [할 수]도 있지만,
2. 몹쓸 것을 써서, 쓰일 데에, 도움을 못 주고, 그 일로 말미암아 부작용, 역효과가 나게 "되는 수"도 있다.
위의 2와 같은 일을 하지 않음을 불용(不用), 불요(不要), 불급(不給, 不急과는 다른 개념), 불효(不效)라 하자.
그런데 그런 일을 "안 하기(不作爲)"를 하려면 가장 먼저 "하기"부터 제대로 알고 있어야 사전이건, 중도이건, 사후이건
그 "하기"를 안 할 수가 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위 "안 하기"라는 행위가 독립적인 것 처럼 오해하고 "안 하겠다"는 말은 너무나 쉽게
잘 하지만, 실제로는 "안 하기"라는 독립적인 행위가 없으니 할 수가 없어서 못 한다.
먼저 "하기" 부터 정확히 알고서야 사전에 "(그걸)하지 말자" 하거나, 중도에 "(이걸) 그치자" 하거나, 사후에 "(그걸)
다시는 하지 말자"고 하는 식으로 "안 하기"를 할 수가 있는 것 이다.
법률상 용어에 부작위(不作爲)가 있다.
단순히 아무 것도 안 한다는 뜻이 아니라, 먼저 어떤 행위를 가정적 전제로 해 놓고, 그걸 하지 않는다는 뜻 이다.
예컨대, 산모가 유아에게 젖을 먹이는 일(授乳)을 하지 않음을 "(수유) 부작위"라 하고, 그로써 아이가 죽으면 "부작위에 의한 살인"에 해당된다.
그러니 통상적으로 "불(不)"자가 붙는 행위를 지칭하는 언어는, 그 것이 붙지 않는 행위와 상대적인 언어이므로,
하지 않기를 하려면, 하기 부터 제대로 할 줄 알아야, 아는 그 행위를 하지 않을 수가 있게 된다.
예컨대, 먹지 않기를 하려면 먹기를 할 줄 알아야, 그걸 하지 않을 줄도 알게 되는 것 처럼이다.
몹쓸 것 이란, 써서 효용을 얻기 보다는 오히려 쓰지 않음이 낫다는 뜻 이다.
불용처분, 매각처분, 폐기처분등의 대상이다.
이런 것을 쓸 데(효용 가치)가 있는 것 처럼 쓰지 않으려면, 그 것이 몹쓸 것 이라고 알아야만 한다.
그래야 쓸데 없는일을 안 할 수가 있다.
그 누군가(주로 자기)의 삶에 쓰일 데(要)가 없는(無要) 일을 하는 것은 쓰일 데 없는(不要) 일 이다.
그런 일에 시간, 노력, 비용을 투입하면 할 수록 그 이상의 역효과만 나게 된다.
그와 같은 쓰일 데 없거나 역효율적으로 쓰일 일을 하지 않으려면 그 일이 "쓰일 데 없는 일"이라고 알아야 한다.
그래야 쓰일데 없거나 부작용, 역효과만 날 일을 안 할 수가 있다.
어떤 일이건 하고도, 그 성과가 사람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不給) 소모적, 낭비적인 일 이다.
그런 일을 하지 않으려면, 그 일이 "불급(不給)한 일" 이라고 알아야 안 할 수가 있다.
어떤 일을 함이 하지 않음에 비하여 성과보다 비용이 많이 들거나(비능율), 비용에 비하여 성과가 적거나(비효과) 하면
비 효율적(效率的)인 일 이다.
일을 하기 전이나, 하는 중도에는 능율이나 효과를 -예측하는 방법 말고는- 미리 알 길이 없으니,
예측을 하지 않거나 소홀히 하고선 오판을 피하기 어렵다.
고로, 비효율적인 일을 하지 않으려면 일을 끝내기 이전에 가급적 빠를 수록 [비용/효과 예측]을, 하고 난 후에는 조속히
[비용/효과 분석]을 정확히 하여 다음에 반영해야 한다.
어떤 식으로건 효율성(효과성+ 능율성)이 떨어지는 일을 하지 않으려면, 그런 일임을 알아야 가능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소위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위와 같은 4불(四不)을 몰라서 못 한다,
그 것을 알기가 어려워서 모르는 것이 아니라, 누가 가르치지도 않았고, 스스로 의문을 만들지도 못 해서다.
그러니 이제부턴 누구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