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佛家)에서 흔히 하는 말에
"사실 그대로 보라"는 것이 있다.
보통 사람들이 그런 소리를 들으면, 들은 그대로의 소리를 말(뜻)이라고 알기 때문에
그 어떤 의문도 없게 된다.
"소리 그대로 들은", "글자 그대로 본" 것에 더도, 덜도 아니게 된다.
그렇지만, 필자와 같은 -궁금증이 지극히 밚다 할 정도의- 사람은 너무나 많은 의문을 가지게 된다.
"사실"(이란 단어의 뜻)이 무엇이지?
"(사실을 알아야) 사실 그대로가 무언지 알 수 있쟎은가?"
"본다"(라는 단어의 뜻)가 무엇이지?
이하에서는 필자 나름으로 그 말의 뜻을 탐구 내지는 정립해 보고자 한다.
사실(事實)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최광의 : 존재하는 모든 것(太虛, 空, 氣, 體) 일체.
2. 광의 : 위 에서 태허(太虛)를 제외한 모든 것 일체.
3. 협의 : 위 에서 태허, 공(空)을 제외한 일체 중, 그 개인의 감각적 내지는 과학적으로 지각이 가능한 것 일체.
4. 최협의 : 그 순간에 지각하고 있는 대상에 국한.
여기(이 글에)서는 위의 3과 4의 뜻으로 쓰고자 한다.
자기(그 개인)의 두뇌 속에 있는 의식은 당연히 제외된다.
사실과 동일시 되기 쉬운 유사한 것과의 구별.
1. (그 개인의 두뇌 속) 식(識) : 감각중의 기록인 실제식(實識), 감각적 경험의 기록인 경험식(驗識), 순수한 상상인 상상식(想識)과 남으로 부터 전해 들어서 형성된 전언식(言識)의 네 가지가 있다.
실제 사실(위의 3,4에 해당)과 접촉중의 산물인 실제식(實識)도 사실이 아닌데,
과거의 기록에 불과한 경험식(驗識),
전혀 경험이 없었던 상상식(想識)이 어찌 사실일 수 있으며,
남으로 부터 전해 들은 소리에 불과한 전언(言識)이 어찌 사실일 수 있으리오.
그렇지만, 사람은 그 누구라도 사실 자체를 추호도 알 수가 없고,
단지, 그 순간에 감각적으로 접촉중인 사실 자체에 관한 정보(實識)라고 할까...)만 알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이 거의 없다.
두뇌 속 에서, [모니터]에 떠 오르는 정보만 접촉하는 정신이 그 자신이라고 알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지만....
2. (그 개인의 두뇌 속 識에 부가되어 있는 상대적 언어인) 마음(意)
비교어, 평가어, 판단어, 선택어, 결정어 등은 두뇌 외부에 사실로는 없고, 두뇌 외부의 사실에 붙지도 않고, 두뇌 외부의
사실에 영향을 받아서 생주이멸 하지도 않는다.
단적으로, 그 어떤 마음도 사실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사실 그대로] : 있는 그대로라는 뜻 이다.
당연히 "아는 그대로"가 아니라는 뜻 이기도 하다.
왜냐, 아는 그대로는 그 순간에 두뇌 속에 떠 올라 있는 의식에 더도, 덜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그대로]는 그 누구도 볼(알) 수가 없다.
단지 [사실 그대로]와 어느 정도나 유사하게 의식화 하여 보(아)느냐 여하가 있을 뿐 이다.
봄(觀)은 안다는 뜻 이다.
보고서 안다(본다).
들어서 안다(들어 본다)
맡아서 안다(맡아 본다)
맛을 안다(맛 본다)
만져서 안다(만져 본다)
"사실 그대로 보라"는 말을 두 가지로 풀이할 수 있다.
첫째, 적극적으로 [사실 그대로]에 가깝게 -통찰, 종합과 분석등- 알려고 노력하라는 뜻 이고,
둘째, 소극적으로 "아는 그대로"를 [사실 그대로]가 아니라고 깨달아라는 뜻 이다.
첫째의 뜻으로 소위 실사구시(實事究是)를 지향하라고,
둘째의 뜻 으로 "아는 그대로"가 [사실 그대로]와 달라서 빠지는 혼란과 부작용을 경계하여 예방, 해소하라는 가르침이다.
사실은, 그대가 지급 보고 있는 것 그대로(實識)가 아니다.(보지 못 하는 부분이 얼마나 많은지, 보는 부분이 얼마나 적은지.)
당연히 기억도, 상상도, 남의 말도 지금 있는 사실이 아니다.
또 사실은, 크다 작다거나, 좋다 나쁘다는 등 그대 마음과 아무 상관이 없다. (意識은 사실이 아니다)
사실을 그대로 그대로 보기(알기)는 누구도 불가능하지만,
사실 그대로와 가깝게 보려고 노력하기는 누구나 가능하고, 그 노력만큼 공덕도 거둘 수 있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