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성민호가 부른 [드라마] 야망의 주제곡 노랫말중 일부이다.
"사랑도, 미움도 훨훨 벗어서 버려라"는.
속 에도 거북함이 없게 버리고, 거죽에도 거추장스럽지 않게 벗고......
많은 사람들이 그 노랫말을 참 좋다고 한다.
그래서 그대로 실행하고 싶다고 한다.
그렇지만, 막상 실행은 커녕 시도조차 못 한다, 왜?
"사랑", "미움"(이라는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안다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르는 줄 알면 스스로 탐구하여 차려서나, 남 에게 물어서나 알려고 할 수 있지만,
아는 줄 알고 있으니 알 길을 찾을 수가 없다.
"사랑이 사랑이지", "미움이 미움이지", "벗음이 벗음", "버림이 버림"이라고 알고 있으니 그럴 수 밖에.
사람이 살아 감에 있어서 "의식적인 괴로움과 육체적인 아픔(합쳐서 苦痛)"이 없으면 그로써
가히 천국같은 삶이라 할만 하다.
대부분의 고통은 타고 난 본성에서의 [욕구(欲求)]와 무관하거나 정도를 넘는 "욕망(慾望)"이 씨앗이 되어서
발생한다.
필요 충분한 정도의 호흡, 섭취와 배설의 욕구만을 충족하고 안전, 건강, 순탄하게 살려는 사람에게
-탐욕적인 타인의 관여만 없다면- 무슨 고통이 생기겠는가....
특히, 기본적인 욕구만을 충족하고, 타인에게도 그 것이 가능토록 방해하지 않고 돕는다면 말 이다.
소위 인류의 발전이라는 과학, 문명, 발명등이 인류의 고통을 줄인 측면도 적지 않지만, 오히려
고통을 엄청나게 증가케 한 측면이 훨씬 더 심각하다 아니 할 수 없다.
또, 사람이 사람과 서로 사이(間)를 이루는 인간(人間) 생활이 도움도 크지만 고통의 원인이 됨도 그에 못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인생은, 헤일 수 없이 수다한 종류와 끝 없는 정도로 치닫는 탐욕에 빠진 우매한 정신들 때문에
지구, 인류의 심각한 위기까지 우려된다.
60억이 넘는 인류의 문제라 하지만, 그 실체는 개, 개인의 문제 이상도, 이외도 아니다.
한 개인이 두뇌 속에만 쌓여 있는 백해무익한 탐욕을 버리고,
두뇌 바깥에 실행, 실현하려는 거추장스러운 욕심이란 옷을 벗어 버리는데서 부터 인류 공동체의 희망을 본다.
그런 개인이 많아지고, 그 영향력이 널리 파급될 수록 그 희망은 더 확장되고....
백해무익한 내면의 짐(마음)을 버리기는 너무나 쉽다.
그리움, 원망, 미움, 후회, 절망(진정한 절망이 아니라 싫어하는 절망)등이 백해무익 하다는 것을 알기가 어려운가?
그 것을 그저 "백해무익이구나, 버리자"고 말만 하면 되는데 무엇이 어려운가?
역효율적인 외면의 치장(지위, 명예, 권력, 재력등 탐욕)을 포기하기도 너무나 쉽다.
투입되는 시간, 노력, 비용에 비하여 그 산출이 실생활에 효용이 필요하지 않다면 "쓸모없다"고 알기가 어려운가?
예컨대, 일생을 불편없이 살 수 있는 연금이 있는데 왜 더 많은 축재를 위하여 직장, 투자, 영업을 하려고 골몰하는가?
그저 "이제 지위, 명예, 권력, 재물욕등 모든 걸 벗어서 내려 놓자" 하고 말만 하면 되는데......
그런데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
자신이 누구의 무엇이고, 그 본분이 무언지를 자각하지 못 하는 우매한 정신 때문이다.
버리고 벗어야 할 짐과 누더기를 보물처럼 애착에 빠진 정신이라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