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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불(成佛)과 해탈(解脫)

나 아닌 내 2022. 6. 7. 14:43

 

 

[붓다](부처)가 됨을 성불이라 하고, 괴로움에서 벗어 남을 해탈이라 한다나......

성불하려고, 해탈을 이루려고 애 쓰고 기 쓰는 사람들이 아니라도,

두뇌(마음) 속으로 은근히 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붓다가 되는 방법에 돈오(頓悟), 점수(漸修)가 있다더라.

단번에 깨달아서 붓다가 되는 방법을 돈오라 하고,

점점 닦아서 되는 방법을 점수라 한다더만.....

 

붓다에게는 괴로움이 없으니 해탈할 일도 없다.

보통 사람(凡人)들은 붓다가 아니라서 괴로움이 많고 그래서 해탈을 추구한다.

 

그런데 [붓다]라는 말의 뜻이 무엇이고, 그 뜻에 해당되는 실체는 어디에, 어떻게 있는가?

이런 문답을 해 보는 사람이나 보고 들은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요약하자면 “[붓다}를 모르면서 [붓다]를 안다는 사람들이 가히 보편적이다.

 

[붓다][붓다]이지....이런 식으로 아는 사람이, 그런(?) [붓다]가 되기를 바라고 온갖 애를 쓴다.

웃을 일 인가, 동정해야 할 일인가?

 

누가 어떻다고 알건, 그가 아는 "붓다"는 그의 두뇌 속에 의식된 그대로 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의식된 그대로의 붓다에 공통적인 것은, 그 대부분이 ㅇㅇㅇ에서 들었다

이루어 진 것 이다.

 

"여기에 이렇게 있쟎아" 하면서 보고 만질 수 있는 그 무엇도 아니고,

두뇌 속 의식으로만 있는 "붓다(의식)"일 뿐 이다.

간혹 "있는 그대로 전부가 붓다이다"라는 의식의 소유자가 있지만, 그렇다면 유별나게 붓다 운운할 일이 워라고...

 

어쨌거나 해탈을 하려면 몇 가지 전제가 성립되어 있어야 한다.

 

1. 본래 부터 일체 고뇌가 없는 [붓다]로서 불변의 존재여야 한다.

   본래 [붓다]가 아닌 것이 후천적인 노력으로 [붓다]가 될 수 있다면 왜 그리 어려울까?

깨달음만으로 [붓다]가 된다고 했지, 소위 "환골탈태"라도 해야 한다고는 안 하지 않던가...

 

2. 그 불변의 [붓다]가 착각과 혼동에 빠져서 고뇌에 속박된 것 처럼인 현상에 처해 있어야 한다.

본래 부터 이미 [붓다]이면서도 스스로(自) 깨닫지(覺) 못 해서 엉뚱한 껍질을 자신이란 착각에 바져서,

그 껍질로서의 괴로움을 자신의 괴로움이라는 혼동에 빠져 있어야 한다.

 

3. 그 불변의 [붓다] 스스로, 본래부터 여전히 붋변의 [붓다]임을 깨달음으로써 저절로 해탈되어야 한다.

엉뚱한 껍질이 본래의 자신이 아님을 알았으니 저절로 벗어 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위의 3을 즉신성불(이미 그대로 붓다이니, 새로 붓다가 될 일이 없다고 깨달음), 돈오(내는, 모든 번뇌와 따로이므로

속박이 있을 수 없으니 해탈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단번에 깨달음)라 한다.

 

그런데 통상적인 붓다관, 깨달음은 전혀 다르다.

1. 붓다가 아닌 중생(보통 사람)이 닦고 깨달아서 [붓다]가 되는 것이 성불이라고,

2. 정신이, 그 에게 묻은 때를 딱고 씻어 내듯이 함을 점점 수행이라 하고 그로써 해탈함이 성불이라고.

 

어느 주장이 옳으냐, 그르냐를 -보편적이 아니라 일반적으로라도 납득이 가능하게- 증명할 길은 없다.

그렇다면, 어느 주장이 더 많은 사람에게 실용적 도움이 될까?

결론은 자명하지만....... 

 

2,600년 전 [싯달타의 삶]을 보자.

그는 중생인 붓다였나, 붓다인 중생이었다, 그저 붓다이기만 했는가?

처음 부터 [붓다]였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 하여 헤매다가 -비로소 성불이 아닌- 이미 붓다임을 자각하였다고

제자들을 가르친 것 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