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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와 타인(自他), 내와 대상(主客), 나와 상대(我汝).

나 아닌 내 2022. 7. 29. 22:40

위의 세 가지늕 전혀 다른 차원이다.

따라서 혼동하게 되면 혼란이 발생한다.

 

사람끼리와

그 사람의 두뇌 속 정신과 의식끼리와,

그 의식계의 어떤 의식 속 주인공과 상대끼리는

엄연히 다른 차원이니 혼동으로 혼란이 유발된다는 것이 어쩌면 희극같은 비극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상 세 가지 차원은 혼동, 혼란스럽기 그지 없다.

용어부터 혼용되고 있으니,

그 용어로 지칭되는 대상 또한 혼동될 수 밖에.

 

그래서

1). 사람과 사람끼리,

2). 정신과 의식끼리.

3). 의식중의 주인공과 상대끼리는,

그 이름을 어떻게 지어서 부르던지 확실히 구별하여 짓고 사용해야 혼동, 혼란을 피할 수 있겠다.

 

그러자면, 그 일을 할 수 있고, 해야만 할 유일한 기관인 [내] 자신의 각성이 긴요하다.

[내] 자신의 각성이 없이는 시도는 커녕,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이라는 것 조차 모르니까.

 

그 다음으론, 이 몸의 두뇌 속 의식계에 

1). 사람과 사람끼리, 2). 정신과 의식끼리. 3) 의식중의 주인공과 상대끼리를 어떤 이름으로 칭할까를

먼저 확정해 놓아야 한다.

그 명칭이 바로 이 글의 제목이다.   

 

먼저, 이 사람은 [자기]라 하고, 그 밖의 사람은 [타인]이라 칭하고, 그 둘을 합쳐서 [자타]라 하기로 한다. 

"자타일체"니, "자타구별"이니, "자타차별"이니, "자타동등"이니 할 때는 모두 사람을 지칭한다고.

 

다음으로,

정신은 아는 주체(主)이고, 의식은 알려지는 객체(客)이니, 그 둘을 합쳐서 "주객"이라 칭하기로 한다.

여기서의 주(主)는 대상을 객체로 하여 아는 일을 하는 주체라는 뜻 일뿐 "임금"이란 뜻도, "주인"이란 뜻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여기서의 객(客) 또한 아는 주체에게 알려지는 객체라는 뜻 일뿐, "신하"나 "노예", "손님"이라는 뜻 아니다.

 

이상과 같은 구별을 왜 했느냐, 무슨 근거로 "필요하고 유익한 구별"이라고 하느냐고 묻는다면

다음과 같이 답하고자 한다.

 

그 세 가지 중에서 사람이 가장 높고, 정신(내 자신)이 그 다음이고, 마음(나, 상대)이 가장 낮은데도,  

그 중간의 정신(내 자신)이 우매하면 가장 높여 섬겨야 할 사람이 경시 내지는 무시되고, 가장 낮추어 다루어야 할

마음(意識)이 가장 높은 주인인 것처럼 중시 내지는 유시(唯示 :오직 그 것만 있는 것으로 보임)된다.

그래서 발생하는 희극적인 비극을, 교육을 통하여 사전에 예방하건, 정신적 자각을 통하여 시정할 필요와

그로 인한 유익이 얼마나 중차대 하리란 것은 설명을 요하지 않으리라 본다.

 

사람(자가와 타인)끼리의 대화는 같은 사람끼리 조화롭게 잘 살기를 지향해야 마땅하고,

정신과 마음(의식)끼리의 대화(?)는 같은 주인인 사람이 잘 살기를 지향해야 마땅하고,

마음(두뇌 속 나와 상대) 끼리의 대화(?)는 그 것을 담고 있는 사람에게 무해유익을 지향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현실은 어떤가?

[사람]끼리의 대화는 물론이고, 정신과 마음끼리의 대화도 거의 없다.

"오직 나(唯我)"만을 위해서, 남(他)이 아닌 자기 두뇌 속 "상대인 너(汝)" 와 "아여자 끼리"의 맹목적인

쟁투만 있을 뿐 이다.

 

통상적인 "아여자(我汝者)끼리의 푸념"을 예시해 본다.

"나(我)는 이토록 너(汝)를 상하여 그리워 하는데, 너는 어찌 그리 무정하게 나를 괴롭히냐고!?"    

"나는 네가 너무나 미워서 생각조차 하기 싫은데, 너(汝)는 왜 자꾸 기억나서 나(我)를 괴롭히냐고!?"

 

도대체 누구의 무엇을 위하여,

누구의 무엇이 행하는,

푸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