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그 머리 속에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근거인 두뇌를 달고 있다.
그런데, 그걸 잘 쓰면 최고의 보물과 같지만, 제대로 쓰지 않거나 못 하면 최악의
애물(碍物)과 같다.
그런데도 그 두뇌를 잘 쓰지 않거나, 제대로 쓰지 못 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반면에 제대로 잘 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왜, 왜, 왜 그럴까?
첫째(왜)는, 머리를 써야 할 자(기관)가 스스로(自)로서의 깨달음(覺), 즉 자각이
없기(不覺) 때문에, 두뇌 속에 형성되어 있는 "자기에 관한 의식"을 대(對)하여
알면서, 그 것을 자신인 줄 착각(錯覺)에 빠지고도 그런 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안다는 너는 무엇이냐?"는 물음에,
태연히 "나는 이러 저러한 사람인 아무개이다"라고 두뇌 속 아의식(我意識)을
자신이라고 알고 말 하는 것이 그 때문이다.
둘째(왜)는, 머리를 써야 할 자(기관)가 스스로 저 자신에게, 머리를 쓸 자유가
100% 있고, 써야 할 책임도 100%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오히려 머리 속에서 알려지는 의식, 의사, 의향, 의욕, 의지등을 제 스스로
만든, 저 자신의 현실적 인식이라고 혼동에 빠지고도 그런 줄 모르기 때문이다.
"고민 때문에 괴롭다면 너는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물음에,
"내 스스로 고민을 해결할 자유가 없고, 그러니 내게 고민에 대한 책임도 없다,
그러니 해결을 위해 고민을 토로하고, 상담하는 것 이다 " 하는 것이 그 때문이다.
셋째(왜)는, 두뇌를 써야 할 자가 머리(두뇌)를 쓰는 수단과 방법을 모르고,
오히려 두뇌의 속삭임(?)을 맹목적으로 맹신, 맹종하기 때문이다.
말 이라는 것을 타인에게만 하거나, 혼자서 하는 것은 혼잣말이라고만 알기 때문에
자신의 [말]로 두뇌에게 -통찰하면? 관점을 바꾸면? 역지사지 하면? 예상하면? 비교하면?
평가하면? 판단하면?, 선택하면?, 결정하면? 이유는? 목적은? 등등의- 질문을 하고,
하지 말자, 보류하자, 결행하자는 등등의 갖 가지 결정과 명령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뇌 속에서 보이고 들려서 알려지는 의식의 속삭임(?)인 언어(言語)를
자신의 [말]인 것 처럼 착각, 혼동에 빠져 있어서, 자신의 두뇌쓰기에 유일한 수단인
두뇌에게 전하는 [말]을 전혀 구사하지 못 하기 때문이다.
소위 뛰어 난 성인, 철학자, 과학자, 심지어는 유명한 운동선수들 까지 자기
두뇌와 [말]을 주고 받기를 많이 한 사람들이다.
스스로 두뇌와 말을 주고 받는다는 것을 알았건, 몰랐건 간에.
저 하늘 끝의 끝의, 끝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주의 시작과 끝은?
나는 무엇인가?
내를 무엇이 왜 만들었을까?
너는 잘 할 수 있다,
너는 만물의 영장이고 그 중에서도 특출하다.
너는 자기 인생을 운전함에 있어서 최종, 최고의 의사결정자로서
완전한 자유로 전적인 책임을 감당해야 하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