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돼는", "됄", "돼다", "됀다"는 말은, 통상적인 용어는 거의 아니다,
통상적으로는 "되는", "될", "되다", "된다"는 말과 혼용되고 있다.
그 뜻을 엄밀히 구별하자면,
되다, 되는 등은 이루어 진다, 변화한다는 뜻으로 한문으로는 화(化 또는 變,成)를 쓴다.
돼다, 돼는 등은 마땅하다, 괜챦다는 뜻으로 한문으로는 당(當 또는 可)을 쓴다.
전자(化)는 주로 어떤 심리적, 육체적, 물리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뜻 이고,
후자(當)는 사람의 두뇌 속 어떤 행위정보(識)에 부가적으로 연결되는 판단의
일종인 당(當意)/ 부당(不當意)의 마음을 지칭한다.
사용예를 제시하자면,
이 일을하면 된다. 아무리 해도 안 된다.(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일을 해도 됀다.(마땅하다, 괜챦다), 안 됀다(부당하다, 옳지 않다, 그르다)
"됨(化)"은 두뇌 속의 가상, 예상, 예측 또는 설계나 약속대로 이루어 지느냐
여하에 관한 차원이고,
"됌(當)"은 두뇌 속의 어떤 기억이나 상상인 행위정보(識)에 하거나 안 하는 것이
마땅하냐(當, 不當)에 관한 차원이므로 둘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따라서 되는 일을 바래도 "안 돼"라 할 수도 있고,
안 되는 일을 바래도 "안 돼"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되와 돼를 구별없이 쓰게 되면, "되는데 안 되", 안 되어도 되"하게 되니 어리둥절케 된다.
"되어도 안 돼", "안 되니까 포기해야 돼"하고 명확히 구별이 가능한데도....
왜 이 용어의 정의가 중요하냐 하면 "돼", "안 돼"가 아주, 매우 중요한 뜻인데도,
"되", "안 되"와 같은 뜻으로 혼용되기 때문에 그 뜻이 거의 경시 내지 무시되고
있어서 실생활에 활용하지 못 해서 손실이 극심하기 때문이다.
해서는 "안됄 일"(안 해야 마땅한 일)을 하게 되면,
그에 투입되는 시간, 정신력(애), 체력, 기타 자본등이 낭비되고,
그 결과 또한 자기의 삶은 물론이고 주변에 까지 백해무익을 초래하게 된다.
그와 같은 비능율, 역효과등 비효율로 낭비되는 것을 -안 해야 됄" 일이라고
인지하된다면 그 효율이 배가(倍加)되지 않을 수 없다.
자기의 삶에 필요하고 유익할 일은 적정한 정도로 해야 됀다.
그렇지 않을 일은 안 해야 됀다.
해야 됄 일을 안 하는 것도 자기를 사랑하지 않음이고,
안 해야 됄 일을 하는 것도 자기를 학대하고(自虐), 자기를 해침(自害)이다.
문제(장애)가 또 하나 있다.
자기라는 사람을 정확히 알아야, 자기라는 사람을 사랑할 수가 있다.
자기라는 사람을 제대로 모르고, 제가 아는 "나 자신"(我意識)을 자기이고, 자신이고,
사람이라고 맹신에 빠져서 맹종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해서는 안 됄 자학, 자해를
하게 된다.
그래서 그 자신은 자기를 학대, 해꼬지 하는 줄 전혀 모르고, 오히려 그게 자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 처럼 오인, 오해에 빠지게 된다.
사람의 정신이 범하는 해서는 안 됄(不當한) 가장 대표적인 자학, 자해가
소위 "구부득고"(求不得苦= 이루지 못할 것을 추구하느라 자기를 괴롭힘) 이다.
그 것을 구함이 자기자신의 마음이고 그걸 집착함이 자기를 사랑함인 줄 오인,
오해에 빠져서 자기의 삶에 소중한 시간, 정신력, 체력, 비용등을 낭비하고도
부작용, 역효과로 괴로움만 끼치니 못 마땅한 정도도 넘는 범죄적 자학, 자해가 아니고
뭣인가?
대부분의 그리움(愛別離苦), 미움(怨憎會苦)도 결코 해서는 안 됄 범죄적 자학, 자행
행위이지만, 그 본인으로선 그걸 전혀 모른다.
누군가 그걸 알려 주기라도 할라치면 길 길이 성을 내는 원인이, 모르면서 엉터리로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