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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없다, 하기 싫다, 하면 안돼를 혼용치 말아야....

나 아닌 내 2023. 1. 26. 22:01

자기 자신이 알기로 "할 수 있는 일(能, 可能意)"과 "할 수 없는 일(不能, 不可能意)"이 있다.

그 일이 발상이건, 실행의 준비이건, 착수이건, 본걱적 실행이건 "할 수 있다"고 아는 일과

"할 수 없다"고 아는 일이 엄격히, 정확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그 구별이 애매모호하거나 잘못되면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으리라.

 

또, 자기 자신이 알기로 "하고싶은 일"과 "하기싫은 일"에 관한 구별도,

"해야 돼는 일"과 "하면 안 돼는 일"에 관한 구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상 세 가지 모두가 자기 두뇌 속 "어떤 일"(기억, 상상인 識)에 부가(연결)되어 있는 마음(意)이다.

그 사람의 두뇌 밖 어디에도 없는 마음(거의 모두가 제7心意)이다.

그런 마음(意)이 연결된 정보(識)와 유사한 일을, 두뇌 바깥에서 만나게 되면, 그런 마음이 외부의 그 일에

투사되면, 외부의 그 일이 그런 마음과 같은 일 이라고 투영되어 여겨지는 일이 발생한다.

 

그래서 두뇌 속에만 있는 일이건, 두뇌 바깥에서 만나는 일이건 "할 수 있다/없다",

"하고 싶다/하기 싫다", "해야 돼/하면 안돼"  하는등 상대적인 일이 있는 것 처럼 여겨지게 된다.

두뇌 바깥에 실제로 그런 일이 있어서, 그렇게 아는 것이 아니라, 두뇌 속 의식의 투사, 투영 때문에,

그런  일이 있느 것 처럼 여겨질 뿐 이다.

 

예컨대, 신호등이 있는 횡당보도에서 신호를 보는(識), 그 순간에 두뇌 속에 어떤 의식이 형성되어

있었느냐에 따라서 "신호를 무시하고 건널 수 있다(또는 없다)", ("신호를 준수하고 싶다(또는 싫다)",

"신호를 위반해도 돼(또는 안돼)"라는 의식적 행동이 나오지만, 그런 의식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는

그런(마음대로) 행위가 보이지(알려지지) 않는다.

 

그런데 같은 차원끼리의 상대적인 마음이 잘못 형성되어 있다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

할 수 있나, 없나의 차원에서 안전하게 건널 수 없는데 "있다"는 마음으로 건너다가 사고가 나면?

하고싶으냐 싫으냐의 차원에서 신호위반하면 처벌받는데 "그냥(위반) 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통과했다가

처벌을 받으면?

해도 돼나, 안 돼냐의 차원에서 신호 위반하면 안 돼는데 "해도 돼(괜챦아)" 라는 마음으로 통과하다가 사고나 처벌을 당하게 되면? 

 

뿐만 아니라, 이상 세 가지 차원이 서로 섞여서 어지랍게 되면 헛소린지, 엉터리 소린지에 갈피를 잡지 못 한다.

할 수 있지만 하기 싫을 때, 하기싫다고 하지 않고 할 수 없다고 하거나,

하면 되는 일이라도 하면 안됀다는 일일때, 하면 안 됀다 하지 않고, 안 된다고 하거나,

하기싫은 일면이 있지만 하는 것이 유리해서 하는 경우 할 수 있고, 하고싶고, 해야 돼는 일  이라고 하지 않고,

"하기싫은데 어찌 할 수 없어서 한다" 하니 그 성의와 노력, 그리고 결과가 어떻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