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와 같은 질문을 받으면 두 가지 뜻으로 대답할 수가 있다.
1).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라는 두 단어의 뜻이 무엇이냐를 묻는
질문이라고 알고 대답하기.
2).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어떤 실질 조건에 해당되는 사람이냐를 묻는
질문이라고 알고 대답하기.
단어의 뜻은 각 자의 두뇌 속에 있는 그대로 이다.
사전을 보고 기억해 두었건, 남의 말을 듣고 기억해 두었건, 제 스스로
뜻을 만들어서 두었건 그대로 말고는 그가 아는 뜻이 없다.
두뇌 속 단어의 뜻은 다음과 같은 요소로 이루어 져 있다.
이름(名)과 정보(識)는 필수적 요소이고, 마음(意)은 정보(識)에 부가되는
식으로 형성되어 있는 수도 있고, 마음(意)은 없고 정보(識)만인 경우도
적지 않다.
예컨대, "좋은 사람(名)이라 함은, 상냥하고 친절한 언동을 하는 사람(識)
을 지칭한다"는 경우도 있고, (名, 識만인 경우)
거기에 "그 본인에게나 상대방 내지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마음(意)이 부가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名, 識, 意 3박자가 갖춰진 경우)
어쨌거나, 사람의 두뇌 바깥에는 온갖 사람들이 살았거나, 살고 있거나,
태어나서 살겠지만, 그 어디의 누구도 그 있는 그대로의 사람일 뿐,
좋은 사람도 아니고 나쁜 사람도 아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두뇌 속엔 온갖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수두룩 하다.
확실한 것은, 두뇌 바깥에는 좋은 사람이니 나쁜 사람이니 할 존재가 없는데,
두뇌 속에는 좋은 사람이니 나쁜 사람이니 하는 것이 무수하게 많다.
그런데도, 대부분 사람들이 두뇌 바깥에는 추호도 없는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을 "눈 으로 보고서 안다"고 알고(실상은 믿고) 있다.
이런 기괴한 일이 어떻게 발생할까?
바로 의식적 투사, 투영 때문이다.
눈 앞의 누군가가 좋게, "좋은 사람"으로 보인다면, 그건 제 두뇌속 의식의
투사, 투영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 이다.
"나쁜 사람"으로 보이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눈 앞에 있건, 가까운 곳에 있건, 멀리 덜어 져 있건, 죽어서 없건, 두뇌 속(기억,
상상)에만 있건 "좋은 사람(물건, 일)" 이나 "나쁜 사람" 때문에 기쁘건, 괴롭건,
그 모두가 제 두뇌 속 마음(意識)일 뿐 이다.
그걸 제대로 이해하면 다루기가 너무나 쉽지만,
그런 줄 모르면 스스로 다룰 수가 불가능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