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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람" -이라는 말- 의 정체(두뇌 속 意識)

나 아닌 내 2023. 10. 9. 18:08

"좋은 (그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데 만나지 못 해서 괴롭다",

"나쁜 (그 어떤) 인간을 멀리 하고 싶은데 멀어지지 못 해서 괴롭다",

"마음에 드는 (그 어떤) 물건을 가지고 싶은데 가지지 못 해서 괴롭다", 

 

위의 첫째를 애별리고(愛別離苦), 둘째를 원증회고(怨憎會苦),

셋째를 구부득고(求不得苦)라고 한다.

 

색(현실), 수(감각), 상(상상), 행(마음), 식(기억)으로 쌓인 괴로움

(五蘊盛苦)과 함께 후사고(後四苦)라 한다.

생노병사(生老病死) 네 괴로움을 전사고(前四苦)라 하고.....

"인생사 사고팔고(四苦八苦)" 라 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살다 보면 좋은 사람, 물건, 일도 더러 만나고

나쁜 사람, 물건, 일도 더러 만나고,

좋지 않은(또는 나쁘지 않은) 사람, 물건, 일도 더러 만나게 된단다.

 

그런데 "좋은 사람"이니 "나쁜 사람"이니 하는 말의 뜻, 그 말로 무엇을

지칭하는지, 그 말로 지칭되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아는 

사람을 만난 적은 없고 안다는 사람만 만났다.

 

과연 "좋은 사람"의 정체, "좋은 사람" 이라는 단어의 뜻(두뇌 속 意識)

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리 대답할까? 

필자가 지금 독자님의 대답을 구한다면 뭐라고 답하실는지요?

 

설마 "좋은 사람(질문)이 좋은 사람(대답)이지..."하시진 않으시겠지요?

필자처럼 [좋은 사람(名)이란, 두뇌 속의 이러 저러한 사람이라는

정보(색성향미촉어 6識)에 "좋은"이라는 상대적 평판(好意)이 부여되어

있는 의식(意識)을 뜻 한다] , 이런 식으로 답하시려는지요?.

 

키가(識) 커서(大意), 인물(識)이 예뻐서(美意), 학식(識)이 풍부해서(豊意),

말투가 상냥해서(好意), 재산(識)이 부유해서(富意), 사회적 지위가 높아서

(高意), 마음씨가 선량해서(良意), 품행이 방정해서(正意) 등등 다음에

"좋아(好意)"라는 마음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 "좋은 사람"의 뜻 이고, 정체이다.

그 이외의 어디에도, 무엇으로도 "좋은 사람"이라 할 것이 없다.

 

그 "좋은 사람"이 두뇌 속에 기대적 가상 또는 바람직한 상상으로만 있으면

이상형(理想型)이라 하고, 바깥 세상에 그에 해당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의식이 투사, 투영되어 그 사람이 실제로 그런(의식적인) 사람과 같은 것

처럼 보인다.(여겨진다)

 

두뇌 바깥에 있는 그 어떤 사람, 물건, 일도 "좋은", "나쁜", "좋지(나쁘지) 않은"

이라는 마음(意)과는 전혀 무관하다.

 

그 사람의 겉이나 속에 "좋은"이라 할만한 속성이나 외양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의 무엇이 "좋은"이라는 마음을 만들어지게 하는 원인도, 조건도 아니다. 

그저 그 어떤 사람에 관한 정보(識)가 이 두뇌 속에서 펼쳐지는 상대화 작업의

결과에 따라서 형성될 뿐 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외양이나 언동을 동시에 같은 장소에서 접촉한 사람들이

그 사람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각각 다른 평판이 나오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갑 : 그 사람 그 언동(識)이 너무나 훌륭하여 좋더라(重好意)

을 : 그 사람 그 언동(識)이 너무나 터무니 없어서 싫더라(重惡意)

병 : 그 사람 그 언동(識)이 별로 좋지도 나쁘지도 않더라..(無意味, 無心)

 

두뇌 속 어떤 정보(識)에, 상대적인 언어(意)가 전혀 없는 경우를 무의(無意),

무의미(無意味), 무심(無心)이라고 한다.

통상적인 "의미없다", "무의미 하다"는 말은, "의미 있다", "유의미 하다"는

언어와 상대적 언어이므로 순수한 무의(無意)가 아님을 언급해 둔다.

 

"좋은(好意) 사람(識)", "나쁜(惡意) 사람(識)"에 있어서 앞 부분이 마음(意)이고,

뒷 부분이 정보(識)이다.

앞 부분을 주관적 조건, 또는 원인(因)이라 하고, 뒷 부분을 객관적 상황, 사정,

조건(緣) 이라고 한다.

 

이상 두 가지 심리적 원인(내면)과 상황적 조건은 두뇌 속(내면)에 연결되어

있지만, 그 것은 외부의 실제 사실과는 전혀 무관하다.

 

예컨대, 갑을 좋은 사람이라 하는 의식이 이 두뇌 속에 있어도, 갑이 그런 

의식을 만들어지는 과정에 개입하는바 전무하고, 그런 의식이 갑의 실제

존재에 영향력도 전무하다.

 

그런데도, 이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면 갑이 [좋은 사람]이라서, 이 두뇌

속에 "갑은 좋은 사람"이라는 마음이 먹어지게 된다고 오해하게 된다.

 

반면에, 이상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 갑의 상황이나 언동이 어떠하건,

그 것에 관한 두뇌 속 정보(識)에 무엇과 비교하여, 무엇을 기준으로 평가

하여, 무엇을 목적으로 판단하여, 어떤 쪽으로 선택하여, 어떤 마음으로 

결정할 것 인지는 이 두뇌 속에서 하기 나름이라고 알게 된다.

 

"좋다"하건, "좋지 않다" 하건, "나쁘다" 하건, "나쁘지 않다" 하건,

아무 마음도 연결하지 않건 이 두뇌 속에서 하기(되어지기) 나름이라고. 

 

이 점을 강조하는 목적, 이를 잘 활용하면 획득 가능한 실익은 다음과 같다.

 

예컨대, "애별리고"에 있어서 괴로운 조건을 "만나지 못 함(識)"으로만

의식하여 알고 있으니 괴로움을 해소할 수가 없다.

만약에,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터무니 없는 조건을 삼은

마음(意)을 문제 삼으면 "참 바보였구나..."하는 것 만으로 해소할 수가 있다.

 

물론 정신이 우매하면 "괴로워도, 망해도, 죽어도 좋다" 하기도

서슴치 않더라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