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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대(對)사람의 의사소통이 어려운 근본 원인.

나 아닌 내 2024. 10. 3. 10:14

사람과 사람이 서로 만나서 대화를 하기는 쉬워도, 그 대화를 통하여
서로의 의사를 소통(疏通)하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
왜 그럴까?

우리는 사람을 외형적으로 하나(單一)로만 보기 때문에 그 원인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지만 사람(己), 정신(自), 의식(我)이라는 3차원으로 구별해서
본다면 그 원인이 거의 저절로 드러 난다.

"아하, 서로의 '나'가 다르고 경우에 따라서는 서로 반대이구나....",
"아하, 사람의 마음(意識, 특히 그 중의 '나')을 다루는 정신인 [내]
지혜 수준 때문이구나..." 라고 알게 된다.

대화에 참가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음 세 가지를 갖추어서 나선다.
이 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없거나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대화의
당사자가 될 수 없다.

첫째는 사람 그 자체(정신과 마음도 포함하는 전체)의 차원이다.
사람 자체가 없는데, 사람끼리의 대화가 어찌 가능하겠는가?
"죽은 사람"은 마음 속에 있지만, 사람끼리의 대화 당사자가 못 된다.

둘째는 정신이 장애없이, 잠 에서 깨어 나 있어야 한다.
정신이 장기간 기절해 있거나 잠 에서 깨어나지 않은 상태라면
아무 말도 하고 들을 수가 없어서 모르는데 무슨 대화를 하리오.

셋째는 마음(意識), 특히 그 중에서 '나'가 없으면 자기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주장을 품고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무엇으로 근거(識)를 삼고 주장(意)을 펼쳐
대화할 수 있겠는가?

이상 사람, 정신, 마음은 병렬적 나열이 아니라 위계적 순서이다.
평등하지 않고 주체(사람), 하인(정신), 도구와 수단(마음)의
관계와 같다.

대화의 주체라는 차원에서 보면 [사람/사람]의 대화이지만,
그 대화를 진행하는 행위주체의 차원에서 보면 [정신/정신]의
대화이고,

그 대화의 내용 차원에서 보면 "마음/마음"의 대화이다.
대화가 잘 되고, 의사소통이 원활해지려면 소위 마음과 마음끼리
잘 맞아야 한다.

그럴 때 서로의 정신이 하는 말 "우리는 말이 잘 통한다",
"대화가 잘 된다", "우리는 마음이 잘 맞다"는 등 이다.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의사 소통이 불통이 되는 것은
서로의 마음과 마음끼리 다른 정도가 크거나 서로 반대되는
경우이다.

그럴 때 서로의 정신이 하는 말 "대화가 (전혀) 안 된다", "도대체
말이 통해야 대화를 하지", "마음이 너무나 안 맞다"는 등 이다.

여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더러 겪고 있는 일상적인 경험이리라.
누구도 대화가 전혀 안 되는 경험도, 잘 되는 경험도, 그 중간
적인 경험도 하면서 살리라.

그런데 문제는, 대화(즉 서로의 의사소통)가 잘 안 되는 이유를
마음탓 이라고 할뿐, 그 "마음(특히 상대의) 탓" 운운하는 자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안다는 믿음"에 빠져 있다.

바로 그 정신이 스스로(自)와 마음(我인 '나')을 구별하지 못 하고,
'나'를 [내] 스스로인줄 착각에 빠져있으니 '나'의 상대인 '너'(남)
탓 말고는 -'나' 탓 이라고는- 할 수가 없다.
더구나 '나'를 올바르게 다루지 못 하는 [내] 탓임을 어찌 알겠는가?

"남탓" 이란 기준이 바로 '나의 마음'이고, 그 것이 사실상 [내]인 것
처럼 행세하는 지경인데, 무엇이 그런 착각에 빠진 [내]를 자각하게
하리오.

서로의 마음이 다르고, 맞지 않고, 반대되고 하는 일은 드문 일도
아니고 비정상적인 일도 아니다.

서로의 정신만 정상이고 지혜 수준이 어느 정도라도 갖춰지면 그런
마음을 다루어 가면서 대화를 진행하는 일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반면에 어느 일방이라도 정신이 비정상이거나 그 지혜수준이 낮
아서 착각과 혼동에 빠져서 해어나지 못 한다면 대화는 마치
"개 싸움" 같은 차원을 탈피하기 어렵게 된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 소원, 배척, 투쟁이 아닌 -대화를 시도한다는
것은 그 목적이 [사람과 사람끼리 서로 잘 살자]는 공통의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면,

그 대화를 주도해야 하는 양 당사자인 그 사람들의 정신은,
공통의 목적을 실현함에 필요하고 유익한 의사를 만들어서
서로 교류하면서 두 사람에게 최선이 될 합의에 도달하려는
의도를 명심하고 진행해야 마땅하리라.

그런데 두 사람의 정신중 어느 일방이나 양쪽 모두가 비정상,
우매한 수준이라면 각 자의 마음(그 속의 '나'와 '너')이 맞느냐
여하에 따라서 대화의 목적이 아예 없거나 왜곡, 굴절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다음과 같이 비유해 보면 이해하기 쉬우리라.

주인과 주인이 서로 잘 살자고 두 사람의 하인(정신)들 끼리
협의(대화)해 보라고 지시하여 두 하인들 끼리 대화를 시작하자
양가의 개(犬)들이 만나서 혹은 서로 좋다고 요란을 떨고, 혹은
서로 밉다고 으르렁대니 하인들 끼리의 대화가 안 된다.

그럴 때, 일단 개 싸움을 멈추고 개들을 멀리 쫓은 후에 하인(정신)
들 끼리 주인들을 위한 협의를 해야 정상인데,
하인들중 일방이나 상방 모두가 각자의 개(마음인 '나')편을 들기만
하면 어찌 되겠는가? (세상에는 이런 일이 비일 비재하다)

예컨대 부부끼리 대화라면,
먼저 우리 두 사람과 자녀를 포함하는 가정의 안전, 건전, 순탄,
화합을 실현하는 수단과 방법의 모색을 공통의 목적으로 합의해
놓고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일방이나 쌍방이 "자기 마음(한)풀이"의 기회로 삼는
다면 소위 상담이나 치료라면 몰라도 대화(對話)는 큰 화(大禍)를
초래하기 쉽다.

사람들은 "나는 너를"(장현의 노래 제목) 이라는 문제에만 매달릴 줄
알 뿐, [내]가 '나'를, 어찌 해야 하는지에 관하여는 문제 삼으려는
지혜조차 계발하지 안(못?) 해서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