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왜 그 사람을 "나빠, 싫어, 미워" (또는 "좋아", 친하고 싶어") 할까?

나 아닌 내 2024. 10. 8. 11:17

"좋아하는 사람을 가까이 친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상정 이라고들 한다.
"나빠하는 사람을 가까이 친하기 싫어 내지는 미워" 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그런데 "인지상정(人之常情)" 이라는 말 속에는 "고로, 다르게는 어쩔 수 없다"는
뜻이 잠재해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는가?
"왜 좋다고 친하고, 나쁘다고 싫어하는데?" 하는 질문에 "인지상정 이니까" 하는
식으로.
과연 다르게는 어찌 할 수 없는 것이 소위 인지상정일까?

사람이 누군가(타인)를 좋아(또는 나빠) 하는 이유나 목적이 뭘까?
1). 그 사람(타인) 자체가 -어떻게 생겼고,어떤 일을 했건- 좋아(나빠)서?
예컨대, 부모가 자식을 무조건 좋아하듯.

2). 그 사람의 생김새, 직업, (의식적)표현 자체가 좋아(나빠)서?
예컨대, 잘 생겨서, 소위 "사짜"라서, 상냥하고 친절해서 등등.

3). 자기 두뇌 속 위의 2) 기억(識)이 좋아(나빠)서?
소위 "생각만 나도(기억만 떠 올라도 좋아서)"

4), 자기 두뇌 속 위의 3) 기억(識)에 "좋아(나빠)"라는 마음(意)이
연결되어 있어서?
즉, 두뇌 속에 그 기억(識)이 떠 오름과 동시에 "그 사람(識) 좋아(好意)",
"나쁜(惡意) 사람(識)" 이라는 말이 함께 일어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은 위의 1)인 그 사람 자체가, 또는
2)인 그 사람의 것 때문이라는 이유로 알고 있다,
거기에 인지상정 까지 첨가되면 그야 말로 속수무책인 것 같지 아니한가?

대화를 하면서 "지금 그대 논 앞에 그 사람이 어디에 있길래 좋아(나빠) 하는
가?" 하는 질문만 하게 되어도 위의 1)과 2)는 "눈 앞에 없다, 그러니 좋다,
나쁘다 할 근거가 눈 앞에는 없다"고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동시에 "이 마음 속에 좋게(나쁘게) 기억(識)되어 있으니까" 하면서 위의 3)이
자연스럽게(?) 대두된다.
기억(識) 자체가 좋아(또는 나빠)서 라는 위의 3) 이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에게 같은 조건에서 같은 기억이 형성된 두 사람중
갑은 "좋은 기억" 이라고, 을은 "나쁜 기억" 이라고 서로 반대되는 주장을
하는 근거가 무엇일까? 하고 물으면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 한다.

그래서 두 사람의 기억(識)이 같아도 각 자의 마음(意)이 다르거나, 내지는
반대될 수는 얼마던지 있다, 그렇지 않는가? 하고 물으면 동의할 수 밖에
없으리라.

결국은 "그렇군요, 각 자의 마음이니 서로 다르거나 반대일 수 있군요"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위의 4) "좋아(또는 나빠)" 라는 마음 때문이라는
근거가 등장하게 된다.

그게 정답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 기억에서 "좋아(또는 나빠)할 특별한
이유나 목적이 없다"고 선언하고 확인하고 나면 그 순간부터 지금 까지의
"좋은 사람"이 "별 의미없는 사람"으로 변하면서 이후로는 떠 오르지 않게
된다.

"나빠(나쁘다, 싫다)할 이유도, 목적도 없으니 백해무익이구나" 하는 마음,
"불안하다 할 합리적 근거도, 이유도, 목적도 없으니 백해무익이구나" 하는
마음,
"그립다, 보고싶다 할 필요도, 실익도 전무하여 백해무익이구나" 하는 마음
등등을 [내] 스스로 만들려고만 하면 100% 가능하지만,
[내] 스스로 "못 한다, 안 하겠다, 해도 안 된다"는 마음에 빠지는 것도 100%
가능하다.

[내] 선택은 깨어 나 있는 순간에는 무한으로 열려 있을 뿐 이지만,
그 선택의 문을 좁히고 닫는 것 또한 [내] 스스로의 선택임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