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 자아라는 말들의 뜻을 단일로 보는 수도 있고,
복합어로 볼 수도 있다.
자기라는 하나인 본인, 자신이라는 하나인 몸, 자아라는 하나인 의식
으로 보는 수가 거의 일반적 이다.
반면에, 자기를 아는 자 스스로(自)와 대상인 자기(己)의 복합어(自+己),
자신을 아는 자 스스로(自)와 몸(身)의 복합어(自+身)
자아를 아는 자 스스로(自)와 나(我意識)의 복합어(自+我)로 볼 수도 있다.
자, 위의 셋 중에서 "아는자(?) 스스로(自)"를 다르게 표현하면
"스스로(自) 아는 자(?)가 된다.
아는 자에 (?) 의문 부호를 붙인 이유가 있다.
아는 자가 스스로(自) 알수 있는 것은 스스로 아는 자(自知者)가
아닌, 스스로에게 알려지는(被知) 타자(他者)일 뿐 이기 때문에,
스스로(自) 아는 일을 하는 주체임을 자각할 수는 있지만,
스스로를 아는 주체와 알려지는 타자로 양립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알 수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어쨌거나, 그 누구이건 사람에게서 스스로 아는 일을 하는 자
는, 그 스스로를 알 수는 없지만 자기(己), 자신(身), 마음(心)은
알 수가 있어서 안다.
자, 그렇다면 한 사람에게 있어서 위에 열거한
자기(己), 자신(身), 마음(心)을 알려지는(被知의) 대상으로 삼아
스스로 아는 자(主體)는 무엇일까?
그 정체를 아는 방법은 오직, 알려지는 객체 모두를 부정하고 남는
유일한 것이 [내] 이구나.... 하는 공제적(控除的) 자각 뿐 이다.
결국, [내]는 자기(己)를, 자신(身)을, 마음(心=意識)을 아는 자 이지,
[내]게 알려지는 위의 셋 모두가 [내] 아님이 확인 되었다.
위와 같이 아는 주체 스스로(自)와 알려지는 객체로서의 자기(己),
자신(身) 마음(특히 '나' 의식)을 엄격히 구별하여 알게 되면
자기(自己)니, 자신(自身)이니, 자아(自我)니 하는 단어는 쓰지 않거나,
쓰더라도 구별되는 두 단어의 복합이라고 알지, 단일한 뜻 이라고 아는
착각, 혼동에는 빠지지 않게 된다.
이렇게 구별해 놓고, [내]가 아는 자로서 스스로(自),
1) 자기(本人전체)를 어떻다고 알고 상대할 것 이냐,
2) 자신(몸)을 어떻다고 알고 상대할 것 이냐,
3) 나의 마음(心, 我意識)을 어떻다고 알고 상대할 것 이냐,
4).내 스스로를 어떤 것 이라고 추론해 보는 것이 정당한가 하는
각각의 문답을 시도함이 필요 유익하다고 아는 이 흔치 않다..
먼저 4) 내의 정체 부터.
[내]는 1) 자기의 일부이니, 그 자체(전체)일 수는 없다.
2) 몸도, 3) 마음도 내게 알려지니, [내]는 몸도 마음도 아니다.
위의 [내]가 위의 1), 2), 3)을 안다는 것은, 그 셋 이 아니면서,
그 셋을 스스로 아는 자 라는 증명이 된다.
1) 자기(본인인 사람)의 일부이니 자기가, 자기를 위하여 만들
어서, 자기를 섬기라는 본분을 부여 받은 것이 [내]라고 보는 것은
복잡하지도, 어렵지도, 힘겹지도, 해롭지도 않은 관점이라고 본다.
2) 자기의 몸 이니, 자기의 삶에 필요, 유익한 일을 하는데 쓰일
수 있게 [내]가 관리, 활용해야 한다고,
3) 자기의 마음이니, 자기의 삶에 필요, 유익한 자료(識)와 평판(意)
으로 [내]가 활용해야 한다고 보아야 당연하다고 본다.
이상을 위계질서로 확립하면 다음과 같다.
이상적, 바람직한 질서 = 1. 자기(본인 =생명과 육신) 2. 내(정신)
3. 마음(意識).
변태적 질서 = 3. 마음이 최고 2 내(정신)가 중간 1 몸(자기의 육신)
이 수단이나 도구처럼.
위의 변태적 질서는 일종의 정신병이다.
음주추태, 상습적 시비꾼, 도박쟁이, 마약쟁이, 사깃꾼, 말썽꾼 등
등이 모두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