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이 블로그)에서는 [내(정신)]와 [자기(본인)], '나(意識)'를 엄격히
구별하라고 누차 강조해 왔다.
그리 하지 않으면 '나'가 [내]라고(착각), '나'가 [자기]라고 동일시 된다고.
그리 되면 [내] 스스로의 주체적 자유와 본분인 책임을 잃게 되어서,
[자기]의 삶(인생)을 올바르게 운전하지 못 한다고.
[내]가 '나'를 올바르게 다루려면 항상 [내]가 독존(獨存)임을 깨닫고
있어야 한다.
"내 혼자만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 어떤 마음(意識, '나'도 그
중의 하나들일 뿐 이다)과도 따로 있다는 뜻 이다.
[내] 스스로임을 망각하지도 말고,
그 어떤 '나'(我意識)와도 주객(主客)관계임을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 이기도 하다.
이상을 실천하는 비결 아닌 비결이 하나 있으니 바로
'나'에 대한 응대(應對)의 습관화 이다.
'나'를 알자 마자 응대를 어떻게 할건지 검토, 결정하는 일을
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그 일이 되면 좋겠어", "그 일이 안 되어서 속 상해",
"아무개 때문이야 미워 죽겠어", "도저히 어찌 할 수가 없어",
"뾰족한 수가 없어",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 "죽어도 잊지
못해" 하는 등등 내면의 소리와 함께 의식이 떠 오르는 경우에
대부분의 사람들(그 정신)은, 소위 제 스스로를 불각(不覺),
망각(忘覺)에 빠진다(소위 정신차리지 못 한다)
그럴 때 평소부터 '나' 응대하기의 습성이 되어 있으면,
[아하, [내] 앞에 이런 '나'(我意識)가 등장해 있구나, 이게
자기(본인)의 인생에 어떤 효용이 있는건지 검토해 보자]
하는 결정을 [내] 스스로의 뜻(自意)으로 할 수가 있다.
물론, 그런 습성이 되어 있지 않으면 누구나 처럼 그 '나'를
[내] 처럼 착각, [자기(人)]인 것 처럼 동일시에 빠져서,
그걸 주체다운 자유와 책임으로 다룰 수가 없게 되고.....
필자는 소년(10대 후반기) 시절에 모 국가시험장에서
"극도의 공포에 떠는 나"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불현듯 [내] 자유와 책임을 깨닫는 순간에 그 공포심
에 거의 사로잡힌 상태에서 탈피하는 기지를 발휘하여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 성과를 올린 경험이 있다.
바로 '나' 응대하기로 성공했던 경험이다.
만약에 그 당시에 [내]가 우매하여 공포에 떠는 '나'가
[내] 자신이고, 이 사람(자기) 자체라고 여겨지는데 그쳤
으면 합격은 커녕 답안 작성도 제대로 할 수 없었으리니...
[내]가 '나'(마음)를 상대하여 응함(對應)에는 다음 넷이 있다.
순응(順應) : 마음이 하려는 그대로 "응"하고 따름.
갈등(葛藤) : 위의 순응과 아래의 반응 사이에 있는 것 으로
순응을 바라는(?) 주관(마음)과 반대해야 한다는 객관(당위)이
얽혀서 발생한다.
반응(反應) : 마음이 하려는 그대로를 "반대"하고 무시함.
대응(對應) : [내] 스스로 주도적으로 마음을 상대로 질문하고
명령하여 결정함.
제대로 [대응]이 가장 자기 인생을 위한 목적적, 합리적,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본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