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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己)와 '나'(我意識) 사이(間)에 [내](自)가 있다.

나 아닌 내 2024. 10. 25. 12:00

[사람]은 생명, 육체, 정신, 마음(意識)의 복합적 유기체이다.
그 중에서 생명이 (있다가) 없으면 하나의 물건과 다를 바 없고,
육신이 (있다가) 없으면 존재 자체가 궤멸되어 공(空)이 된다.

마음(意識)이 (있다가) 없으면(기억상실등) 알려지는 것이 없게 되고,
정신이 (깨어 나 있다가 잠들거나 기절하여) 없으면 아는 일을
전혀 못 한다.

이 글을 작성해 가는 편의상 한 사람 이라는 복합적 유기체를

1). 협의의 [자기](己) = 정신과 의식을 제외한 생명체.
2). [내](自)= 두뇌 속에서 스스로의 말로 두뇌를 부려서 감각, 의식
작용, 지식, 의사결정과 표현(표정, 발언, 행동)들을 하는 정신.
3). '나'(我) = 두뇌 속에 형성되어 있는 마음(意識)중 "그 사람(본인)
에 관한 의식(我意識이라 하자)"중의 하나라는 셋 으로 구별한다.

위의 셋을 생긴 순서대로 수평적으로 배열하면 1. [자기], 2, [내],
3, '나' 이다.
위의 순서대로를 위계질서에 따라서 수직적으로 배열할 수도 있다.

어떻게 배치하건 [자기]와 '나' 사이에 [내]가 있다.
[내]가 알려는 방향에 '나'를 향하는 앞(아래)과, [자기]를 향하는
뒤(위) 둘이 있다.

[내]가 앞(아래)만 보고 [내] 스스로의 순수함을 모르고(不覺),
자기(본인)의 안위(安危)를 포함하는 처지를 모르면 저절로 일어나는
일이 '나'에 빠짐이라 할 수 있는 착각과 혼동이다.

[내] 앞(아래)의 '나'가 [내] 자신인 것 처럼(착각),
그 '나'가 자기(그 사람 본인)인 것 처럼(혼동)을
'나'(마음, 意識)에 빠졌다 한다.

[내]가 알려는 방향을 뒤(위)로 [자기]를 향하면 그 처지를 살피게 되고,
그렇게 살핀 결과를 의식화 하여 그 이후부터 알 수가 있다.
[내] 보다 높은 주인을 위하여 성실히 충성하는 하인격이 된다.
앞(아래)만 보다가는 '나'를 맹신, 맹종하는 -자기에겐 불충, 불성실한-
역신이 되고.

[내]가 스스로의 위치(자기를 섬겨서 '나'를 올바르게 다스리는('나'를
[자기]에게 소중한 도구처럼 만들어서 부리는)를 올바르게 파악하여
준수하면 자기(본인)도, [내]도, '나'도 조화롭고 평안하다.

[내]가 스스로의 깨달음(自覺)이 없으면, [내] 위치도 정확히 알 수가
없고, 그러면 [내] 본분이 무엇인지 알 수도 없고, 그러니 [내]앞에
등장해 있는 '나'가 [내] 자신이고, [자기]라는 사람이라고 여겨지지
않겠는가?

사람들의 인생, 그 안정과 불안,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 모두가
[내] 스스로의 깨달음, 위치파악, 본분숙지와 성실한 이행,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나'(특히 我意=나의 마음) 다루기 여하에 달려
있다.

"(만회할)기회가 있다"는 마음이 없고 "죽는 수 밖에 없다"는 마음이
있을 때 [내] 하기 여하에 따라서는 살 수 있는 사람이 죽기도 하고,
죽을 것 같았던 사람이 살기도 하는 것은 드물지만 있다.

사람은 누구나 그 마음(意識)대로 행동하지만,
그 마음(특히 상대적 언어인 意)은 [내] 스스로 하기 나름으로 통제할
수가 있지만, 그걸 알고 실천(소위 "마인드 컨트럴")하는 정신은 드물다.
그 사람 내면에서 채찍(苦)과 당근(快)으로 명령하는 주인의 고생이
참으로 안타깝지 아니한가?

그 부리는 신(精神)이 맑음(精)을 알지 못 하고 귀신(鬼神)역할에 빠져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