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위와 같은 3위 일체(一體)로 볼 수가 있다.
위의 3위 중 마지막의 [내] 스스로 하기 나름으로.
고로 [내] 스스로(自) 위와 같은 3위 일체로 보거나, 다른 3위 일체로 보거나,
그렇게 보기를 전혀 안 할 수도 있다.
위의 3위중 [내]는, 사람의 두뇌 속에 있으면서 두뇌를 상대로 하여 [내]
스스로의 [말]로 질문과 명령의 형식으로 감각기관, 사고기관, 운동기관을
부려서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고 실제로도 하는 정신기관이 자칭하는
이름이다.
3위중 '나'는 자기(人), 자신(내)에 관한 정보(識)와 그에 연결된 마음(意)
일체로서 아의식(我意識)이라고 하는 것의 약칭이다.
스스로 행위 주체인 [내]와 달라서, [내] 개입이 전혀 없으면 어떤 일도 할
수가 없지만 [내]가 깨어 있으면서 방임하기만 해도 온갖 일을 할 수 있는
자동기계와 같다.
마치 [로봇] 자동차와 같은......
3위 중 [자기]는, 위의 [내]와 '나'를 포함하는 그 사람 전체를 뜻 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내]와 '나'를 제외한 그 나머지 생명과 육신(生命體)이란
뜻이다.
이 3위의 위계질서를 기본적으로 세 가지 유형으로 정립할 수 있겠다.
가. 자기의 삶(人生) 위주형 = 자기의 인생을 위하여.
나. [내] 뜻(自意)대로 형 = 내 뜻을 실현하기 위하여.
다. '나'의 마음(我意)대로 형 = 나의 마음대로 하고파서.
위의 가, 나, 다 유형을 다시 그 아래에 나머지를 어떤 위계로 배치
하느냐에 따라서 각각 2개 유형씩 정립해 볼 수가 있다.
예컨대, 가(자기 인생형) 아래에 "나, 다의 순"으로 배치하거나,
"다, 나의 순"으로 배치할 수 있는 것과 같이,
나의 기본형도 그 아래에 "가, 다의 순" 또는 "다, 가"의 순,
다의 기본형도 그 아래에 "가, 나의 순" 또는 "나, 가의 순"으로
배치할 수가 있다.
그중 가장 극단적으로 상반되는 유형이
1). "가,나, 다"(자기 인생을 위하여 [내]가 '나'를 다스리는) 순과
2). "다, 나, 가"(나의 마음을 좇아서, [내]가 자기를 수단이나 도구처럼
사용하는) 위와 역순(逆順) 이다.
예컨대, 가난한 가정의 어린이의 정신이 스스로, "성실히 공부하여
성공을 이루어 자기를 행복하게 살게 하련다"는 마음을 먹고 실천
하여, 자기를 잘 살게 하였다면 위의 1) 유형이고,
30대 이후의 가장의 정신이 "사는 게 재미없어, 술이나 실컷 마시고,
담배도 마약도 섭취하고 도박도 즐기면서 살고 싶다"는 마음을
좇아서(從) 실천하여, 자기의 건강, 안전, 순탄, 조화를 희생한다면
위의 2) 유형이다.
인류의 대부분이 1)과 2) 유형의 중간지대에 해당되게 살아간다.
그 비율적 분포는 대체로 "마름모꼴" 형태일 것 같다.
극단적 1), 2) 형은 극히 적고 중간형은 매우 폭넓은 형태.
더러 "내 뜻대로 살고 싶다"는 경우가 있지만,
그 "내 뜻"은 대체로 진정한 [내] 스스로의 뜻(自意)이 아니라,
'나의 마음"이 [내 뜻]인 것처럼 착각, 오해된 것(恣意)이 대부분이다.
순수한 [내 뜻]을 관철하려는 사람의 정신은 붓다, 예수, [소크라테스]
등 직극히 희소하다고 보기 때문에
여기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내], 과연 어떤 유형의 위계질서를 확립해 놓고 있을까.......?
자기를 (사랑)하는 나를 (지원)하는 [내]인가,
자기를 (무시, 외면, 학대, 파괴)하는 나를 (맹신, 맹종하는) [내]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