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물어 보시라.
무엇을 가장 잘 안다고 하며, 무엇을 전혀 모른다고 하는가를.
아마도,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안다고 하리라.
전혀 알 수가 없는 것이 무엇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고 하리라.
그런데 내가 그대에게 "나는 나 스스로를 가장 잘 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알 수가(길이) 없다"고 한다면 뭐라고 하실텐가?
무언가를 가장 잘 알면서 전혀 모르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이게 바로 "나"라는 말로 무엇을 지칭하느냐에 따라서 해답이 가능하기도, 불가능 하기도 하는 질문이다.
나 라는 1인칭을 2인칭, 3인칭과 완전히 절연된 상태로 파악해 보시라.
알려지는 그 무엇(2인칭, 3인칭)도 초월해 있는, 오직 1인칭 만의 독야청청 상태를.
그런 상태에서 1인칭이, 스스로를 아는 대상으로 삼을 수가 있을까?
비유하자면,
아무 것도 드러나지 않는 순수한 허공에서 빛을 내는 전등이, 전등 스스로를 비출 수가 있을까?
그대가 만약에 전등이라면, 그대 앞에 드러나지 않는 것을 비출 수 없고, 알 수도 없다.
그대 스스로를 비출 수가 없으니, 볼 수도, 알 수도 없다.
허나, 그대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비추고, 아는 일을 한다고 앎으로써, 그런 일을 하는 나가 있구나 하는 것을 알 수는 있다.
이게 바로, 그대가 스스로를 볼 수도, 들을 수도, 만질 수도 없어서 알 수가 없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이 아닌 뭔가를 아는 일을 하는 그대 자신이 존재함(깨어 있음)을 아는 유일무이한 길 이다.
나가, 오직 나 만으로서의 존재임을 아는 것이 소위 자각(자신으로서의 각성)이다.
여기에는 그 어떤 알아차림도 없다.
모든 알아차림의 선행, 근본의 차원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각의 기회는 거의 없다.
잠 에서 갓 깨어나서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이 "내가 있구나(깨었구나 보다 더 이전이다)" 하는 상태가 자각이고, 명상훈련이 고도에 이르러서 그 어떤 의식(앎의 대상)과도 끊어 진 상태가 자각이다.
여기선 "나"만으로 머무니 그야 말로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왜 자각하기가 그토록 어려울까?
나 아닌 것(非我)을 나 라고 알기(착각, 혼동, 동일시 된 믿음) 때문이다.
단적으로 이 사람 마음(意識) 중의 일부(타의식이 아닌 아의식)를 나 자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믿는다고 아는 게 아니라, 안다고 아는 것 이다.
조금이라도 생각해 보고 나 라고 아는 게 아니라, 번개보다 빠르게 그냥 나 라고 안다.
더 정확히 말 하자면 나 라고 안다는 것 조차 모르고, 그게 바로 나 행세를 하는 꼴 이다.
그대로 폭발하려는 자도 나, 그걸 억압하는 자도 나, 이 두가지의 나들(?) 때문에 쩔쩔 매는 나도, 모두가 나 아닌 -이 사람 마음중의 일부인- 아의식 한낱들일 뿐인데도 말 이다.
사람들에게 물어 보시라.
나가 몇(개)인가를.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몸을 기준으로, 몸이 하나라고 "나가 하나이지 몇 이라니...." 하리라.
또 마음(통?)을 기준으로, 마음이 하나라고 "나가 하나이지...." 하리라.
그러면서 몸을 몇 쪼각(?)으로 나눌 수나 있듯이 눈을 가리키며 내가 본바, 귀를 가리키며 내가 들은 바, 손을 가리키며 내가 만진 바 운운하면서 나가 마치 본나, 들은 나, 만진 나 등등...으로 수다하다고 한다.
또 부모의 아들인 나, 자식의 아비인 나, 처부모의 사위인 나, 직장의 대장인 나, 모 학교의 졸업생인 나, 야구를 좋아하는 나 등등으로 수다하다고 한다.
도대체 나가 하나라는 것 인지, 여럿이라는 것 인지......
나가 하나라는 말은 맞다.
몸이 어릴 때나, 온갖 기억을 저장해 가지고 있을 때나,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고(알고) 있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알려지는 대상은 수다해도- 그걸 아는 나는 항상 유일무이하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내 마음에 떠 올라서, 내가 그걸 나 처럼 알고 있던 것은 무수하게 많다.
바로 그 것들이 무수하게 많기 때문에, 그걸 아는 유일한 나가 아니라는 반증이 된다.
나가, 나 라고 아는 것이야 말로, 그 것이 나 아니라는 유일무이한 증거이다.
그렇지만, 이 얼마나 신기한 착각의 함정이 아니고 뭐람.
내가, 나 라고 아는 것을, 내가 나 아니라고 부정할 수가 있나, 없나?
어쨌거나 진정한 나는, 나 에게 알려지거나 알려 질수 있는 그 어떤 대상과도 다른 별개의 기능이다.
아는 기능이지, 알려지는 기능도, 대상도 아니다.
이걸 제대로 구별해서 알려면 반드시 자각이 필요하고, 나 아닌 것 과의 동일시에 빠지지 않으려면, 그 자각의 상태를 수시로 확인하여 차렷해야만 한다.
자각없이 없이 사는 것 이나, 자각의 상태를 많이 유지하면서 사는 것 이나 "일생은 같다"고 보면 그렇게 알려진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어마 어마하게 다른 일생이다.
실재와 환상, 실존과 허구, 자유와 속박, 사랑과 탐욕, 창조와 답습, 건설과 파괴, 유익과 유해, 살리기와 죽이기의 차이와 같기 때문이다.
삶의 주인공인 자기라는 존재를 그대로 아는 것과, 의식된 그대로를 무턱대고 자기라고 아는 것의 차이,
이 우주와 그 안의 삶을 그대로 아는 것과, 의식된 그대로라고 무턱대고 믿는 것의 차이가 어떨지는 누구라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으련만.............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