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들 말 합니다.
"사랑하는 아무개"라고.
그런데, 그렇게 말할 때 "사랑하는"은 주체를 지칭하는걸까요, 객체(상대)를 지칭하는걸까요, 아니면 주체와 객체를 모두 포함하여 지칭하는 것 일까요?
갑이 을을 사랑한다고 할 때, 사랑한다는 주체는 갑 이지만, 사랑한다는 대상은 을 이니까요.
그렇다면 대상으로서의 을은 갑(주체)의 "사랑한다"에 대상이기만 할까요?
사람이 평등하다는 전제에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런 이야기(따지기?)를 하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근본은 문제 삼지도 않는 것이 내겐 문제로 의식됩니다.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 무어냐는 것에 관하여는 아무 의문조차 없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마치, 사랑이라는 것이 누구나 분명하게, 확실히 잘 알고 있는 것 처럼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님께서는 "사랑"이라는 단어로 지칭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는지요?
설마 "사랑이 사랑이지, 그 뻔한 것도 몰라서 물어!?" 하시진 않으시겠지요?
그렇게 여기시더라도 잠시만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시기를....
사랑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 포옹해 주는 것, 잊어 주는 것, 떠나 주는 것, 참아 주는 것, 가까이 하려는 것 등등....이루 헤아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사랑의 가지수가 그렇게 많다는 것은, 역설적으로는 그게 바로 사랑이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예컨대 [밥을 먹여 주는 행동]은 밥을 먹여 주는 행동 그 것이고, "밥을 먹여 주는 행동이 사랑이다"는 소리는 사람의 소리(말) 이지요.
때문에 [밥 먹여 주는 행동]에 "사랑"이라는 말을 붙인다고 붙는 것도 아니고 "사랑"이라는 말을 붙이려 하지 않는다고 [밥 먹여주는 행동]에 어떤 영향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밥 먹여 주는 행동]을 보면서나 기억에서 두뇌에 떠 올려 놓고서 "저(그)게 사랑" 이라고 말 하면서 그게 마치 섞이는 것과 같은 착각을 하게 됩니다.
또, 그렇게 말 하는 사람의 소리를 들으면서 "그래 그게 사랑이지" 하는 사람은 [밥 먹여 주는 행동]을 사랑이라고 여기게 되고, "그게 무슨 사랑이야, 그냥 밥 먹여 주는 행동이지" 하는 의식을 가진 사람은 그걸 사랑이라고 여기지 않게 되고 "살찐 사람에게 밥을 먹여 주는 행동은 학대야" 하는 의식을 가진 사람은 그걸 학대라고 여기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랑이 욋적인 사실이 아니라, 미움(또는 사랑 아님)과 상대적인 의미어에 불과하다는 것, 그 의미어만 으로는 아무 뜻도 없다는 것, 그 의미어에 어떤 뜻(표정, 표현, 행동)이 연결되느냐에 따라서 정해지는 것 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비슷할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고, 정반대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에컨대, 어린 자녀에게 무조건 "오냐, 그래" 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의식의 소유자가 있는가 하면, "그건 자식을 망치는 짓 이다" 하는 의식의 소유자도 있고, "그건 때와 장소(개별적, 구체적 상황)에 따라서 사랑일 수도 있고, 해침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식의 소유자도 있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다.
사랑은 (무엇)이다고 할 때, 그 (무엇)에 들어 가는 것이 전국민에게서 공통이라면 그건 죄악이다.
오히려 대동(大同)한 경우에도 소이(小異)가 있는 것이 건전하다.
다만, 이 것은 현실론이지 이상론은 아니다.
이상적으론 같을 수만 있다면, 같은 의식의 소유자가 많을 수록 바람직 하겠지만....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