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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스스로(自) 못 보면?, 스스로 보려면?

나 아닌 내 2024. 10. 19. 20:52

먼저 단어의 뜻 부터.

[내] : 사람의 두뇌(우) 속에서, 두뇌(좌)를 대(對)하여 질문과 명령
으로 촉각, 지식 (知意識), 사고, 행위등 일을 하는 정신이 스스로를
칭하는 이름이 [내] 이다.

'나' : 사람의 두뇌(좌)에 형성되어 있는 자기 자신에 관한 의식중의
하나를 '나', 그 '나'들 전부를 아의식(我意識)이라 한다.

보다(觀) : 두뇌(우) 속에 있는 [내]가, 두뇌(좌)에 떠 올라있는 의식
(意識)을 대(對)하여 안다(知)는 뜻 이다.

눈 으로 봄을 시(視), 견(見) 이라 하고, 정신이 마음(意識)을 대(對)함을
관(觀)이라 하고 관의 결과가 곧 앎(知)이다.(관은 행위, 앎은 그 결과)

예컨대 "만져 본다"는 말은, 손의 신경으로 사물을 접촉하여 생성된
두뇌속 정보(觸覺)를 대하여 안다는 뜻 이다.
소리를 들어 본다, 냄새를 맡아 본다, 맛을 본다, 마음(意)을 들어 본다
는 등등도 같은 뜻 이다.

[내]가 -잠 들지 않고- 깨어 나 있고, [내] 앞에 의식(意識)이 떠 올라 있으면,
가. "[내] 스스로(自) 본다고 알고서 보는" 경우도 있고,
나. 스스로 보는 줄 모르는 채로 "저절로 보아지게(보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시대적 고금(古今), 양(洋)의 동서(東西)를 막론하고 인류의 99.99999% 이상이
위의 "나"에 해당되고, "가"에 해당되는 사람은 극 소수에 불과하지 않을는지.....
이 구별의 실익은 다음의 예시를 검토해 보면 자명해(저절로 밝혀) 자리라.

지금은 물론이고 이후로도 자기(본인)로서는 -상대가 죽었거나, 이민갔거나,
소재불명이라서, 멀리 있어서 오고 갈 수가 거의 없어서 등등- 어찌 할 수 없는
사람이 과거에 한 짓(말, 행동의 기억인 識)이 떠 올라 있을 때, 그에 연결되어
있던 -미워 죽겠다, 꼭 복수하고 싶다, 망하는 꼴을 보고싶다, 죽이고 싶다
등등 '나'의 마음(意)이 [내] 앞에 떠 올라 있을 때,

가. "[내]가 스스로 보고 있다고 알고서 보면(觀)", 그 것에 빠짐(착각, 혼동)
없이 자유자재로 그걸 다룰 수가 있게 된다.

나. "그저 보이는 대로 보는데 그치면(示)", 그 것이 지금의 현실처럼 동일
되고, 그 속의 '나'(我相)와 그 마음(意)을 [내]라고 착각에 빠지지 않을
없게 된다.

위 '나'의 경우에는, [내]와 '나'가 밀착된 것(自+我=自我) 처럼 되어 있는
상태에서 스스로(自)를 깨닫지 못 하니(不覺) '나'를 [내], '나의 마음'을
[내 뜻(自意)]이라고 착각에 빠지게 되는 일이 거의 보편적이다.

마치 [내]가 '나'인 것 처럼(착각), '나'의 상황과 의사가 [내] 현실인 것 처럼
동일시 된다.
"자아"란 환상으로 밀착되어 구별을 못 하기 때문이다.

이런 밀착성 착각에 빠지지 않는 아주 단순하고 쉬운 방법이 하나 있으니,
그 무엇을 알건 간에 그 순간에,

"[내] ! " 하고 무언으로 외치고 일단 멈춤(止)을 한 다음에,

"내가 아는 것 일체가, [내] 아닌 두뇌 속 마음(意識)일 뿐 이니,
내가 아는 모든 '나'(자기, 자신, 내 자신, 성명 기타 등등 자기자신
이라는 의식중 하나)는 [내] 다스림의 자유와 책임의 대상일 뿐 이다" 하는
확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