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라는 단어의 사전적, 상식적인 뜻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이다.
1). (알려지지 않는 것을) 미루어(짐작으로) 알아내는 능력.(눈치로 알아챈다)
2). (내면의 의식이) 은연중에 겉으로 드러나는 어떤 태도. (눈치가 보인다)
위의 1)은 드러나지 않은 대상을 타인이 아는 주체로서 미루어 짐작하여 아는
주관적인 능력,(속내를 알아채다)
2)는 스스로 드러내지 않은 내면(의식)의 일부가 본인도 모르게 드러나는
객관적인 현상을 뜻 한다.(속내가 드러나다, 속내가 들통나다)
위의 1)과 2)는 대체로 동전의 양면과 같다.
위의 2), 그 일부를 보고 1)(그 속내의 전부)을 안다는 것 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의 2)가 없으면 1), 즉 "남의 속내를 안 보고도 안다"는 일이 없다.
다만, 그런 식으로 남의 속내를 안다는 사람들의 거의 전부가 눈치(2)를 보고
속내(1)를 안다는 믿음에 빠져있음을 모른다.
오히려 남이 감추고 있는 속내를 보지 않고도 "눈치로 안다"는 오인에 빠졌을
뿐 이다.
따라서 소위 남의 표정, 발언, 행동, 심지어는 그 어떤 표정조차 없는 사람을
대하고 있으면서도 "그의 속내를 (눈치로) 다 안다"는 사람들 모두가 실제론
제 두뇌 속 짐작(가정적 상상)을 마치 눈으로 본 것 처럼 "눈치"라는 이름으로
맹신에 빠져있을 뿐 이다.
그 어떤 사람도 남의 두뇌속 마음(意識, 의사, 의향, 의욕, 의견등)을 직접 대(對)
하여 알 길은 추호도 없다.
남의 표정, 발언, 행동을 대(對)하여 -두뇌 속에 정보(識)화 하여, 그걸- 알 수는 있어도
그 남의 두뇌 속 속내 자체의 추호도 알 길이 없다.
따라서 남의 속내를 안다는 경우는 그 전부가 자기 두뇌속에 미루어 짐작된 소위 "눈치"를
아는 것 이상도, 이외도 아니다.
자, 그렇다면 소위 "눈치"라는 것의 실질적 정체는 무엇일까?
눈으로 보지 않은 것(제 두뇌속 가상)을 마치 눈으로 본것 처럼 여기는, 눈을 쓰는 자(정신, 내)의
어리석음(痴)이다.
그런 오인, 오해, 오판을 거쳐서 외부의 대상이 보이는 것을 의식적인 투사(投射), 투영(投影)
이라고 한다.
남과 대화하면서, 남의 대화를 제대로 듣기도 전에 중간에 가로채어 "네 속내 다 안다"는듯
설치는 사람을 더러 볼 수 있다.
그 딴에는 제가 특출나게 현명한 정신이기나 한듯 오만에 빠져 있을 뿐, 실제로는
너무나 우매한 눈치병에 빠진 정신상태임을 모른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내 뜻", "내 진의", "진정한 내 속내" 등등 무엇을 아무리 진지하게 표현해도
그 자신이 알고 있는 제 두뇌속 "눈치"와 다르면 "거짓말, 내가 네 속내를 모를 줄 알고, 안 봐도(?)
뻔히 다 안다"고 요지 부동이다.
그런 사람을 상대로 "네가 아는 "내 속내"는 네 두뇌 속에 네 눈치로 만들어 진 네 마음(의식)"이라고
아무리 가르쳐 주어도 길길이 날뛰기만 한다.
그러니, 애쎠 대화하건, 목 터지게 언쟁하여 얻을 건 없고 피차에게 해로울 뿐이니 36계 줄행낭이
현명하다.
어쨌거나 남에 관한 자기 두뇌속 소위 "눈치"를 어떻ㄱ데 다루느냐에 따라서 약효를 취할 수도 있고,
독약에 당할 수도 있다.
첫째, 내가 아는 '것' 일체, 그 정체가 무엇인가? (두뇌 속 의식적 구조물)
둘째, 그 것을 알고 다루는 [내] 스스로(自) 깨닫고(覺) 있는가? ('것'의 하나인 '나'라고 착각 않고)
셋째, 애매모호한 "눈치"와 진정한 속내를 구별할 줄 아는가?(눈치는 이 두뇌 속, 진정한 속내는 남의
두뇌 속)
넷째, "눈치" 다루기(만들기, 고치지, 바꾸기, 버리기)의 수단과 방법은?(두뇌에다 말로 질문, 명령)
다섯째, 눈치의 효용을 사전에 미리 예측해 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