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다음]의 불로거가 만든 뉴스에 "분노를 다스리는 명상법" 이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5만을 넘는 조회수에 추천도 35인 이던가.....
소위 "어렵고 재미없다"고 여겨지기 일쑤인 그런 글에 그 정도의 관심표명이 있다면, 그 필자가 글을 평이하게 잘 쓰지 않았을까 ...............
그 글의 요지는 대체로 아래와 같다.
화는 인연에 따라서 일어나겠금 되어 있는 것 이므로, 일어나는게 자연스러운 것 이다.
화가 날 만한 인연이 있는데 화가 나지 않는 것이 비정상이므로, 화 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지 않는게 오히려 문제이다.
때문에 화가 나면 그저 가만히 관찰하기만 하라.
어차피 인연이 다 하면 사라질 것 이고, 인연이 다 하기 전에는 사라지지 않으므로.
그런데 문제는 화가 나는 순간에, 그 화에 나를 붙이기 때문에 문제이다.
나는 화 난다, 네가 나를 화 나게 했다, 나는 화가 나서 참을 수 없다는 등등으로 화 에다 나를 붙인다.
그래서 "화 + 나"가 되어서, 자연스런 화가 인위적인 화가 되는 것 이다.
바로 위의 마지막 부분에 대하여 나는 이의를 제기하고자 한다.
화에 나를 붙이는 것 처럼 아는(믿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 분에게 조용히 묻고자 한다.
"당신께선 화가 날때, 화 에다 나(당신)를 붙이는 줄 아시는지요?"
만약에 붙인다고 안다면, 누구라도 그 붙이기를 하거나 그치거나를 쉽게 할 수 있으리라.
붙이는 줄 모른다면, 나가 하는 붙이기라 하기가 정당하지 않은 것 같을 뿐만 아니라(이몸 안의, 나 아닌 뭔가가 하더라도), 화에 나 붙이기를 하지 않거나 그치기도 불가능 하게 된다.(붙이지 않기라는 것을 어찌 모르고서 한다는 말 인가....)
그래서 나는 그 부분에 대하여, 필자 자신이 다음과 같이 수정하기를 제의한다.
마음(의식)을 관찰하는 나는 마음 속에 있을 수가 없고, 마음과 합칠 수도 없고, 어떤 마음을 잡을 수도 없고 놓을 수도 없다.
그저 관찰하여 알 뿐 이다.
알고 난 다음에 나는 말을 이용하여 마음을 만들거나 다스리기를 할 수가 있다.
이상은 누구라도 조금만 실험해 보면 이해하기가 쉽다.
화가 나는 마음도, 나는 그 것과 따로인 상태로 관찰한다.
그런데, 그 화가 나는 마음은 그 자체가 하나의 소위 아의식(아상, 아의, 아견, 아욕, 아(불)만족등)이라는 것 이다.
자기의 두뇌 속 의식계에 있는 무수한 의식들 중의 어느 하나인 -타의식이 아닌- 아의식이다.
그 아의식이 공격을 받거나, 원하는 바와 강력한 의지로 반대되는 상황과 접촉하고 있을 때, 그 아의식을 방어하거나(소극적인 짜증), 공격(가해)자에게 반격 내지는 가격하려는 강력한 충동 에너지가 발생하는바 이게 화 이다.
이상으로 모든 화의 내면에는 아의식이 있지만, 그 것은 그걸 관찰하는 나 자신이 아니다.
나 에게 관찰되는 의식의 하나에 "나"라는 이름미 붙어 있을 뿐 그건 참 자기도 아니고, 그걸 관찰하는 나 자신(깨어 있는 정신)도 아니다.
분노를 다스리는 방법을 마련하려면,
분노가 아니고, 분노 속에 있지도 않고, 분노를 모를 수도 없는 무엇인가가 주체로 나서야 한다.
분노가 그 분노를 다스릴 수는 없고,
분노 속에 있는 분노의 일부가 전체 분노를 다스릴 수도 없고,
분노를 알 수가 없는 자도 분노를 다스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제 결론을 내릴 차례이다.
너무나 단순해서 알기 쉬운 결론이지만........
나는 분노가 발생하면 신속하게 그 분노를 조용히 관찰하여 알아치리기 부터 한다.
어떤 인연(내 마음인 원인과 그에 연결된 욋적인 조건)에서 분노가 발생했는지를 파악한다.
그리고 나서, 그 분노를 어떤 방향으로 다루는 것이 효율적일까(가능성, 능율성, 효과성)를 예상하고 추리해 본다.
화를 폭발하듯이 내는 게 최선인지,
화를 전적으로 억제하는게 최선인지,
화가 나는 건 정당하지만, 어느 정도 통제하는 게 최선인지를.....
결코, 분노 속에 나 자신이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아무리 나 처럼 여겨지는 것이 있다 해도, 나 에게 알려진다면 그건 모두가 의식적 구조물(아의식)이지, 그걸 보는 나는 아니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를 이해하면, 그 어떤 화도 다스릴 수가 있다.
폭발에 휩쓸리지도 않고, 어거지로 억압하려다 자기 인생에 상처를 입히지도 않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