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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도통(道通), 언어도단(道斷).

나 아닌 내 2006. 11. 11. 17:36

사전에야 어떤 뜻 으로 풀이해 놓았건,

언어도통은 "언어의 길(주고 받는)이 통한다",  "언어가 도(道, 진리, 법칙, 실존 그대로)와 통한다"고 풀이할 수도 있고,

언어도단은 "언어의 길(주거나 받음)이 끊어 졌다", "언어가 도와 단절되었다"고 풀이할 수도 있다. 

 

어떻게 풀이하거나, 풀이하는 사람의 의식적 작업이지만 지금부터의 이 글 에서는,
여기에 올리는 글자(字)나 입술을 거쳐서 나오는 말(소리)을 합쳐서 언(言)이라 하고자 한다.
언(言)으로 표현하기 전에 두뇌 속에 이미지(識, 정보, 색성향미촉)로 형성되어 있는 상태를 어(語)라 하고자 한다.
언(言)과 어(語)의 차원이 아닌 실제의 존재상태를 도(道)라 하고자 한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위의 언,어,도를 다음과 같이 예시하고자 한다.
갑이 방 안에 있고, 그 곳에 여러가지 도구들이 있다 - 도(道)
그 중에서 컴퓨터 자판 위의 먼지가 거북하다는 마음이 갑의 두뇌 안에 생겼다 - 어(語)
을 에게 '컴퓨터 자판 청소도 하지 않다니.....' 하고 말 했다 - 언(言)
 
자판 위에 먼지가 쌓일만 하면 쌓이고, 그게 사라질만 하면 사라진다.
이건 순전히 물질(물리 화학)적 법칙에 따라서 발생, 지속, 변화, 소멸한다.
사람이 물질적으로 개입하면 -크게건, 작게건- 어떻게든 그 영향이 발생한다.
이걸 도(道), 특히 물도(物道)라고 해 볼까나?
 
물도(物道)의 일부와 관련된(그 전부와는 결코 불가능 하므로) 정보가 개인의 두뇌에 형성되니 이걸 식(識)이라 하고 그걸 특수한 기호인 말 이나 문자로 변환한 것이 어(語, 識語, 語識)이다.
예컨대 붉은 색 태양을 본 경험적 기억(識)을 '붉은 색 태양을 보았다'는 글자로 적은 것과 같다.
 
두뇌 속에 형성되어 있는 특수기호인 어(識語)를 입 이나  손 끝으로 표현해 내는 것이 언(言, 字)이다.
어(語)가 두뇌 내부의 실질정보라면, 언(言)은 두뇌 외부로 표현된 형식정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언(言)이건, 어(語)이건 그건 모두가 도(道-있는 그대로의 사실)에 관한 순간적, 부분적인 정보일 뿐, 결코 그 이상의 도(道)일 수가 없다.
물론, 말 소리나 글자도 청각적, 시각적으로 접촉이 가능한 사실(道의 일종)이긴 하지만....
 
이제 언어도통과 언어도단에 관해서 말할 차례가 된 것 같다.
언어도통이라고 함은 언과 어와 도가 서로 상통한다는 뜻 이다.
도(道)의 일부를 접촉하여, 획득한 정보(語)라고 표현한 말(言)이 -즉 道와 語와 言이- 서로 일치하는 정도가 매우 높다는 뜻 이다.
들은 사람이 실제로 확인(道를 접촉)해 보니(識語형성), 들은 말(言)과 같더라는 경우이다.
 
그에 비하여 언어도단이라고 함은 언과 어와 도가 서로 연결되지 못 하여 통하지 않는다는 뜻 이다.
입으로 표현되는 언(言)이 두뇌 속의 정보(識語)와 다르거나(거짓말, 표현상 착오),
 
두뇌 속에 형성된 정보(識)가 도(道)와 양적으로 너무나 부족하거나 질적으로 너무나 현격한 차이가 나는 경우(정보의 부족, 부실)
그 정보(識)를 말로 변환함에 있어서 착오가 있는 경우(번역상의 착오)도 있다.
 
이와 같은 언과 어와 도의 불통, 단절은 한 개인의 차원에서도 발생하지만, 그 혼자서는 그런(언어도단)줄을 쉽게 알지 못 한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가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지만, 그 조차도 자신이 알고 있는 자기의 언어(정보와 말)에 대한 집착(사실은 盲信이다)에 빠져 있는 한 그 기회를 잡기 어렵다.
 
사람들끼리의 대화는 언(言)을 표현하고 청취하는 식 으로만 진행된다.
각 자의 두뇌 속에 형성되어 있는 정보(識語)를 그대로는 물론이고, 그 일부나마도 -언(言) 이외의 방법으로- 직접 표현할 길이 없다.
하물며, 두뇌 바깥에 있는 그대로인 도(道)를 어떻게 추호라도 두뇌에 넣거나, 말로 실어나를 수 있으랴.
 
그러니 엄밀히 말 하자면 언어도단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언과 어와 도가 정확히 일치하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언과 어와 도가 일치되는(또는 다른)-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고, 그 일치하는 정도가 비교적 높은 것을 언어도통(적), 비교적 낮은 것(상이하는 정도가 높은 것)을 언어도단(적) 이라고 할 수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정도만 알아차려도 사람들끼리의 대화에 상당한 도움이 되리라.
많은 사실(道)을 정확하게 정보(識), 언어(語)화 하여, 그대로(정확하게) 표현(言)하려고 애 쓰고, 그렇지 않은 정보를 만들지도, 표현하지도, 들어서 믿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
 
두 사람 이상이 서로 마주 보면서 이야기를 하는걸 보고 듣노라면 서로의 말을 주고 받는 것과 같은 형식이 아니라, 각 자가 제 소리만 내는 것을 심심챦게 본다.
그 당사자의 수고와 낭비야 말할 나위도 없지만, 곁에 있는 사람도 짜증이 나지.....
 
또 어차피 공지의 특정사실을 놓고 그 의견이 정반대로 대립하는 경우에 각 자가 제 주장(결론)만 할 뿐, 공통의 목표(상생적 목적)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그 머리 속에 -상상적 語識으로나마 - 만들어 담은 바 없으니 나올 것이 없을 수 밖에....
 
하옇든 -다른 동물도 그러리라 여기지만- 사람은 언어없이는 더불어 살기 어렵다.
그런데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언어가 없으면 조용할 것이- 언어때문에 치고, 받고, 죽이는 일도 발생하니........
 
그러니 부디 제발 언어도통 하면서 살아 가자구요.
한시 바삐 언어도단에서 벗어 나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