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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對)하여와 관(關)하여.

나 아닌 내 2006. 11. 15. 04:16

우리가 누군(무언)가를 안다고 할때
'나는 그 것에 대하여 안다'고 하는 말과 '나는 그 것에 관하여 안다'는 말을 구별해서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쨌거나 우리가 누구(무엇)에 대하여건, 관하여건 아는 것은 제 의식이다.
누구(무엇)에 대한 의식이건, 관한 의식이건 다 제 두뇌 속의 의식이다.
 
때문에 '대하여나, 관하여나 그게 그거지' 하는 의식이 있는 사람은 그렇게 알 것 이고,
'대하여는 무엇이고, 관하여는 무엇인데...?' 하는 의문만 있고 답이 없는 사람은 모르겠다고 알 것 이고,
'대하여는 대하여고, 관하여는 관하여지 뭐긴 뭐야, 그 것도 몰라?' 하는 의식이 있는 사람은 그렇게 알 것 이다.
그 밖에 '대하여는 (이러 저러한 것) 이고, 관하여는 (그러 그러한 것)이야' 하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괄호 속의 의식대로를 알 것 이다.
 
결국은 사람마다의 두뇌에 어떻게 의식되어 떠 올라 있느냐가 그 당시에 아는 것 이고, 지금 두뇌에 어떻게 의식해 놓느냐가 이후에 아는 것이 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일 이다.
 
자, 그렇다면 여기(이 글) 에서는 왜 '대하여'와 '관하여'를 구별하려고 하였는가를 밝히면 다음과 같다.
대하여와 관하여를 다르게 구별함으로써, 정보의 신뢰도를 구별할 필요가 매우 많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다.
 
먼저 대하여와 관하여를 다음과 같이 구별하기로 한다.
 
'대(對)하여 안다'는, 우리 몸의 5관(눈귀코혀몸의 감각신경)으로 대상과 직접 상대하여 형성된 정보(안식, 이식등 다섯가지 識인 색성향미촉)를 아는 것을 지칭한다. 
 
다음 '관(關)하여 안다'는, 어떤 대상에 대해서 안다거나 관하여 안다는 사람의 말(글)에 대하여 아는 것을 지칭한다.
 
예컨대, 갑이라는 사람을 만나서 대화했다는 을의 이야기를 직접 대하여 듣고서 안다는 것 으로서 '갑에 관한 을의 이야기에 대해서' 안다는 것 이다.
분명한 것은, 나로서는 갑에 대하여는 전혀 상대한 적이 없어서 알지 못 하고, 갑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는 을의 이야기에 대해서만 안다는 것 이다.
 
여기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직접 대해서 알지도 못 하는 것을, 남의 말 이나 글을 대하여 아는 것에 불과한 것을, 마치 직접 대하여 아는 것 처럼 혼동(착각)하는 일이 많은지를 조용히 확인해 보면 결과가 어떨 것 같은가.....  
 
나는 그 가장 흔하면서 심각한 부작용을 파생시킨 현상으로 소위 '지역감정' 이라는 것을 들고자 한다.
 
언론에서 ' 공화당 소속 국회의장의 발언이라고 보도하면서, 김대중은 사상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 마치 김대중을 직접 대하여 빨갱이 짓을 하는 것을 본것 처럼 혼동이 된다.  
 
또 군대에서 제대해 온 사람이 '전라도 놈들은 이러 저러하게 야비한 놈들이니 조심해', '경상도 놈들은 이러 저러하게 고약한 놈들이니 조심해' 하는 등으로 상대 지역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듣는 사람으로서는 그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의 이야기에 대하여 아는 것 이지, 전라도나 경상도 사람을 직접 대한 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전라도나 경상도 사람에 대하여 안다고 할 수 있나......
 
특히 정치인들이 교묘하게 악용하는 것이 바로 '대하여'와 '관하여'를 혼동하는 사람들의 습관을 가로채어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 이상인 것 처럼- 세뇌시켜서 맹신케 하는 술책이다.
 
희한하달까, 유감스럽달까.......이와 같은 거대한 혼동(착각)의 구조가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확연하게 밝혀지기 이전의 사회에는 언론의 자유가 만개할 수록 세뇌의 폐해가 더, 더욱 가중되는 일이 벌어진다.
 
차라리 독재시대에는 세뇌 공작의 나팔수인 '카더라 방송'에 잠재적으로 대응하는 '유비통신' 이라는 것이 상당한 신빙성을 증灼歐竪?했지만, 지금 우리 사회와 같은 정도에서는 보도와 논평의 7,80%가 나서서 외쳐대기만 하면 대부분의 국민들이 확신이 아니라, 맹신에 까지 이르고 마는 것 같은데, 나만 그리 보는가.....
 
사회의 한 단면이랄 수 있는 이 475 게시판에도, 누구에 대하여 거의 모르는 사람이 그에 대하여 자세히 잘 아는 것 처럼 착각하여 내는 소리(글)를 드물지 않게 본다.
 
그런데 그 사람의 무엇에 대하여 아는 가 하면, 그 사람이 올린 글에 대하여 아는 것 뿐 이다.
그 글에 대하여도 전부 아는 것이 아니라, 지금 제 두뇌에 떠 올라서 알려지는 것만 알 뿐 이다.
 
그렇다면 그 정도라도 제대로 아는 걸까?
천만의 말씀이다.
 
떠 올라 있는 것 이라는 것도 엉터리가 있을 수 있다.
기억의 착오, 환기의 착오라는 것 이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에 관한 '남의 글(이야기)에 대하여' 아는 것을, 마치 그 사람 자체를 대하여 아는 것 처럼 착각하기도 한다.(이게 소위 패거리 형성의 요인)
 
게다가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어떤 사람에 직접 대(對)한 적도 없고, 타인으로 부터 관(關)하여 들은 바도 없으면서, 그 사람의 글에 대하여 일어 난 제 두뇌의 의식적 반응(예컨대, 이런 글은 길어서 짜증난다, 이런 글은 시원해서 좋다는 등)에 대하여 아는 것을, 마치 그 사람 자체에 대하여 아는 것 처럼 혼동하는 일은 더, 더욱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가 흔히 구미(口味)라고 하는 단어는 입맛이라고 직역도 하지만, 혀 끝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입술로 부터 나오는 소리에 대하여 두뇌에서 반응하는 쾌, 불쾌의 맛 이다.
 
그 구미의 모두가 상대(그 생김새, 표현등)로 부터 전해 오는 것이 아니라, 나의 두뇌에서 형성된 의식적 반응이라는 것을 안다면, 남의 글(이야기)에 관련하여 일어나는 쾌, 불쾌를 상대의 글(이야기) 때문이라고 고마워하거나 그토록 집요하게 싸우지는 않으련만.....
 
끝 으로 흔한 속된 말 하나를 인용해 놓고자 한다.
'오는 말은 개떡 같아도 듣는 말은 참떡 같이 들어라'
개떡같은 말은 개떡이 아니고, 참떡 같은 말도 참떡이 아니다.
 
아니기 때문에 '무엇(의미) 같이(처럼)' 형성해서 들리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정신은 현명하지만...............   
만약에 개떡같다면(개떡이라면) 온전한 정신으로 어떻게 참떡처럼 여겨지게 할수 있으리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