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를 사실이라 하고자 한다.
누군가가 "사실이라고 안다"는 것도 그렇게(누가,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있는 그대로이다.
내가 안다는 것, 누군가가 안다는 것 모두가 "알고 있다"는, 앎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앎의 대상은 과연 무엇일까?
그 사람의 두뇌 속 의식일까, 아니면 두뇌 바깥의 사물이나 현상일까?
결론만 말 하자면, 그 누구도 제 두뇌 속의 떠 올라 있는 의식말고는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다.
엄밀히 말 하자면, 두뇌 바깥의 사물이나 현상을 추호도 알 수가 없다.
다만, 두뇌 바깥의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相對한) 정보(識)를 알 수 있을 뿐 이다.
그 정보란 것은 시간적으로 감각적 접촉이 있는 동안만의 정보이다.(예: 보는 동안)
공간적으로 감각적 접촉이 있는 상태의 정보만이다.(예: 보인 상태)
그러니, 그 정보는 실제로 존재하는 전체(시간적, 공간적 한정이 없는)에 비하면 양적으로 너무나 부족하다.
또, 그 정보는 질적으로도 두뇌 속에 형성된 정보이지, 두뇌 바깥에 있는 실제 그대로가 아니다.(예: 사진은 실물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가 두뇌 바깥의 누구나 뭔가를 안다고 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에 비하면 너무나 허황하지 않는가....
사실에 대하여나, 관하여 우리가 안다는 것의 실상이 이러하다.
아무리 많이 정확하게 접촉하여 정보를 획득해도, 그런 정보는 실제 있는 그대로에는 질적, 양적으로 너무나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이걸 깨닫는 사람은, 제가 그 무엇에 관해서도 안다고 감히 나서기가 주저스럽게 된다.
그래서 더 많이, 더 정확하게 사실에 가까운 정보를 획득하려고 나서게 된다.
이렇게 사실을 더 폭 넓게, 제대로 알고자 하는 성격을 사실주의라 하고자 한다.
한편으로 자신이 아는 것을 사실을 안다고, 아는 것이 사실이라고 -믿는 줄도 모르고(착각으로)-믿는 사람은 제가 아는 것(제 두뇌에 떠 오른 의식)에 관하여 추호의 의문조차 없고, 그러니 더 많이 자세히 알려고 할 리가 어찌 있으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