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잘못은 서로 상대적인 비교, 평가어(의미,마음의 意 부분)이다.
마음에 있는 모든 의미(意)는, 반드시 어떤 대상(識)에 종속되어 있다.
고로 의미없는 대상은 얼마던지 있을 수 있어도, 대상없는 의미는 있을 수가 전혀 없다.
예컨대, 내 두뇌 속의 "키가 160cm인 홍길동"은 볼 수만 있는, 의미없는 정보(識)일 뿐 이다.
여기에 "(키가 180cm인 사람에 비하여) 작아서 볼품 없는 사람" 이라는 의미(意)나, "키가 150cm인 사람에 비하여) 커서 풍채가 근사한 사람" 이라는 의미(意)가 붙을 수도 있고, 붙지 않을 수도 있다.
또 무의미하던 상태에서 의미를 붙일 수도 있고, 그 의미를 고치거나 바꿀 수도 있고, 붙어 있던 의미를 떼어서 없앨 수도 있다.
의미(意)가 대상(識)에 종속적이지, 대상이 의미에 종속적일 수는 없다.
예컨대, 사람이 먼저 있어야 그 사람에게 좋느니, 나쁘니 하는 의미를 붙일 수 있는 것 이지, 대상(識)이 없는 의미(意)는 그냥 말일 뿐인, 공허한(내용이 없는) 소리에 불과하다.
잘, 잘못이라는 의미도 마차가지다.
어떤 대상에 붙어 있느냐, 그런 의미가 붙어 있는 대상이 무엇이냐가 명백해 지기 전 에는 공허하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향해서 아무리 확신을 가지고 "너는 잘못했다, 잘못이 많다"고 말 해도, 나는 "무얼 잘못이라고 하느냐, 나는 네가 말 하는 나의 잘못을 하나도 모르겠다"고 할 수 밖에 없는 것 이다.
또 누군가가 나를 향하여 "네가 사람을 너무나 자주, 많이 무시한다"고 소리, 소리질러도 나는 "도대체 내가 너 에게 한 무엇을 무시라 하는지 지적해 달라"는 소리 밖에 더 할 수가 없다.
또 "무시하지 않은 게 있으면 말해 보라, 말 못 하쟎아?" 하는 사람에게도 나는 "나는 무시하지 않았다는 말도 한 적이 없는데, 무시하지 않은 것을 말 하라니..." 할 수 밖에.
많은, 어쩌면 대부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비평어(의미, 意)를 하나의 사실처럼 착각하고 있다.
키가 큰 사람이, 돈이 많은 사람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두뇌 바깥에 실존하기로는 키가 몇 cm인 사람, 돈을 얼마나(액수) 가진 사람일 뿐, 키가 크거나 작은 사람이니, 돈이 많거나 적은 사람은 실존하지 않는다.
키가 크거나 작은 사람, 돈이 많거나 적은 사람은 오직 그런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두뇌 속 에만 있다.
예컨대, 이 사람의 키는 174cm이다.
당신의 두뇌에 그렇게만 입력(識)되어 있으면, 키가 큰(意) 사람이나, 작은(意)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당신의 두뇌에서 키가 180cm인 사람과 비교되면 이 사람의 신장 정보(識)에는 작은(意), 그 사람의 신장 정보엔 (意) 사람이라는 의미가 붙게 된다.
그런 의미가 붙어 있으면, 그래야만 큰 사람이니, 작은 사람이니 하게 되는 것 이다.
잘, 잘못도 마찬가지 이다.
어떤 (특정의) 대상에 대하거나 ,관한 정보(識)가 없이는 잘 이나, 잘못이라는 의미(意)는 내용이 없는 공허하다.
또, 잘과 잘못은 상대적인 의미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달린 정보(識)는 서로 대칭되는 것 이다.
예컨대 "인사를 하는 것(識)"에 잘(意)이 붙으면, "인사를 하지 않는 것(識)"에 잘못(意)이 붙는 식 이다.
성공의 비결을 아는 것에 잘이 붙으면, 실패에 이를 일을 성공에 이를 것 이라고 아는 것에 잘못이 붙는 다.
이상이 잘, 잘못이라는 말에 관한 탐구적 풀이이다.
이제는 도대체 왜 잘, 잘못이라는 구별이 필요한가를 검토해 볼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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