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물주가 무슨 목적으로 탱자를 만들었는지는 다른 누구도 모른다.
탱자 자신도 왜 그렇게 태어 나서 살다 가는지 알지 못 한다.
그래서 탱자는 그게 궁금해서 알아 보려고 한다.
뭔가에 관해서 전혀 모르는 상태, 모른다고 안다는 상태, 엉터리로 아는 줄 모르고 아는 상태는 다르다.
뭔가를 전혀 모르는 상태는, 그걸 모르는 줄도 모르는 상태이다.
뭔가라는 제목 비슷한 것 조차도 아는 게 전혀 없는 상태이다.
두뇌 속에 뭔가에 관해 의식된 게 없어서 정신이 깨어 있어도 전혀 모르거나, 뭔가에 관한 의식이 있어도 정신이 완전히 잠 들어서 알 수가 없는 경우의 둘이 있다.
(여기서는 정신이 깨어 있으면서 모르는 경우만을 전혀 모르는 상태라 하련다)
이 상태는 그 자신으로선 당장은 알 수가 없고, 남 이나 알수 있을까 말까.......
모른다고 아는 상태란 전부는 몰라도 다소간(多少間)에 아는 상태이다.
다소간에 알지만, 그 자신이 알기로는 뭔가라는 제목 정도만 알뿐, 그 내용은 거의 모른다고 아는 상태이다.
제목조차 모르면 전혀 모르는 상태이고, 제목만 안다면 모른다고 아는 상태이다.
엉터리로 알면서 그런 줄 모르고 (제대로) 안다는 상태는, 그 자신으로선 제가 아는 바(그 순간에 제 두뇌에 떠 올라있는 의식)가 뭔가의 전부를 그대로 아는 것 이라고 믿고 있지만, 그가 안다는 것이 시간적으로(나중에 제대로 알고 보니 ), 공간적으로(타인이 알고 보니) 뭔가의 전부에 관해서도 아니고, 사실그대로도 아니란 것이 확인 될 때 알게 되는 상태이다.
내가 뭔가를 -제목조차도- 전혀 모르는 상태는 얼마나 될까?
그보다는 내가 아는 것이 전혀 모르는 상태에 비하면 얼마나 될까?
0.0000000000000000000000000.........1이나 될까, 말까............
내가 모른다고 아는 상태는 얼마나 될까?
간혹, 특별한 경우 이외에는 거의 없다.
그러니 나는 [쏘크라테스]로 부터 "무지(無知)의 지(智)" 부터 깨우치라는 회초리를 맞아야 마땅하다.
내가 뭔가에 관해서 엉터리로 알면서 제대로 아는 것 처럼 믿음에 빠져 있는 상태는 얼마나 될까?
엄밀히 말 하자면, 내가 안다는 모두가 이런 상태의 안다(믿음)이다.
그런 줄 모르기 때문에 그런 줄 아는 것이 믿음이다.
모든 믿음이 그렇지 않은가.....(모르니까, 아는 것 처럼 믿는 것)
뭔가에 관해서 엉터리로 안다는 것의 요건은
첫째 양적으로 뭔가의 있는 그대로를 시간적, 공간적 무제한으로 정보화 하여 알 수가 없으므로, 언제나 한정된 정보만을 대상으로 아는 것 뿐 인데, 전부 아는 것 처럼 안다는(믿는) 것 이다.
둘째 질적으로 뭔가를 직접 대하여 획득한 한정된 정보도 (정보일 뿐) 뭔가 자체가 아닌데다, 타인으로 부터 전달받은 정보는 왜곡, 오염, 굴절되지 않기가 매우 어렵거늘 그걸 진실한 것 처럼 안다는(믿는) 것 이다.
엉터리로 안다는 것의 세번째 요건은 그 자신이 제가 안다(믿는다)는 것이 양적으로 너무나 부족하고, 질적으로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많은데도 그런 줄 모른다는 것 이다.
만약에 그런 줄 알기 까진 못 해도, 혹시나.....하는 의문이라도 가진다면 그렇게 믿는 일은 없을 것 이니까.
엉터리로 아는 네번째 요건은 제대로(100%의 정확한 정보)를 진실되게 안다고 믿는 것 이다.
믿음에 빠진 줄 안다면 반신하거나, 불신할 수도 있으니까.
또, 마음에 진실하다는 믿음이 없으면 스스로 믿지 못 하니까.
(믿음은 마음에 있지, 마음 바깥의 뭔가에 붙이는 것도 아니고, 그 곳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러고 보니 "나는 안다"는 말을 하기가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모른다는 것도 모른다"는 말을 자주 자주 경귀(警句)삼아야겠다.
"엉터리로 알면서 제대로 아는 것 처럼 맹신에 자주 빠진다"는 말로 자제의 고삐를 조여야겠다.
이러고서 감히 -건설적인 비판이 아닌- 남의 잘, 잘못을 거론하다니.....
탱자 자신도 왜 그렇게 태어 나서 살다 가는지 알지 못 한다.
그래서 탱자는 그게 궁금해서 알아 보려고 한다.
뭔가에 관해서 전혀 모르는 상태, 모른다고 안다는 상태, 엉터리로 아는 줄 모르고 아는 상태는 다르다.
뭔가를 전혀 모르는 상태는, 그걸 모르는 줄도 모르는 상태이다.
뭔가라는 제목 비슷한 것 조차도 아는 게 전혀 없는 상태이다.
두뇌 속에 뭔가에 관해 의식된 게 없어서 정신이 깨어 있어도 전혀 모르거나, 뭔가에 관한 의식이 있어도 정신이 완전히 잠 들어서 알 수가 없는 경우의 둘이 있다.
(여기서는 정신이 깨어 있으면서 모르는 경우만을 전혀 모르는 상태라 하련다)
이 상태는 그 자신으로선 당장은 알 수가 없고, 남 이나 알수 있을까 말까.......
모른다고 아는 상태란 전부는 몰라도 다소간(多少間)에 아는 상태이다.
다소간에 알지만, 그 자신이 알기로는 뭔가라는 제목 정도만 알뿐, 그 내용은 거의 모른다고 아는 상태이다.
제목조차 모르면 전혀 모르는 상태이고, 제목만 안다면 모른다고 아는 상태이다.
엉터리로 알면서 그런 줄 모르고 (제대로) 안다는 상태는, 그 자신으로선 제가 아는 바(그 순간에 제 두뇌에 떠 올라있는 의식)가 뭔가의 전부를 그대로 아는 것 이라고 믿고 있지만, 그가 안다는 것이 시간적으로(나중에 제대로 알고 보니 ), 공간적으로(타인이 알고 보니) 뭔가의 전부에 관해서도 아니고, 사실그대로도 아니란 것이 확인 될 때 알게 되는 상태이다.
내가 뭔가를 -제목조차도- 전혀 모르는 상태는 얼마나 될까?
그보다는 내가 아는 것이 전혀 모르는 상태에 비하면 얼마나 될까?
0.0000000000000000000000000.........1이나 될까, 말까............
내가 모른다고 아는 상태는 얼마나 될까?
간혹, 특별한 경우 이외에는 거의 없다.
그러니 나는 [쏘크라테스]로 부터 "무지(無知)의 지(智)" 부터 깨우치라는 회초리를 맞아야 마땅하다.
내가 뭔가에 관해서 엉터리로 알면서 제대로 아는 것 처럼 믿음에 빠져 있는 상태는 얼마나 될까?
엄밀히 말 하자면, 내가 안다는 모두가 이런 상태의 안다(믿음)이다.
그런 줄 모르기 때문에 그런 줄 아는 것이 믿음이다.
모든 믿음이 그렇지 않은가.....(모르니까, 아는 것 처럼 믿는 것)
뭔가에 관해서 엉터리로 안다는 것의 요건은
첫째 양적으로 뭔가의 있는 그대로를 시간적, 공간적 무제한으로 정보화 하여 알 수가 없으므로, 언제나 한정된 정보만을 대상으로 아는 것 뿐 인데, 전부 아는 것 처럼 안다는(믿는) 것 이다.
둘째 질적으로 뭔가를 직접 대하여 획득한 한정된 정보도 (정보일 뿐) 뭔가 자체가 아닌데다, 타인으로 부터 전달받은 정보는 왜곡, 오염, 굴절되지 않기가 매우 어렵거늘 그걸 진실한 것 처럼 안다는(믿는) 것 이다.
엉터리로 안다는 것의 세번째 요건은 그 자신이 제가 안다(믿는다)는 것이 양적으로 너무나 부족하고, 질적으로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많은데도 그런 줄 모른다는 것 이다.
만약에 그런 줄 알기 까진 못 해도, 혹시나.....하는 의문이라도 가진다면 그렇게 믿는 일은 없을 것 이니까.
엉터리로 아는 네번째 요건은 제대로(100%의 정확한 정보)를 진실되게 안다고 믿는 것 이다.
믿음에 빠진 줄 안다면 반신하거나, 불신할 수도 있으니까.
또, 마음에 진실하다는 믿음이 없으면 스스로 믿지 못 하니까.
(믿음은 마음에 있지, 마음 바깥의 뭔가에 붙이는 것도 아니고, 그 곳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러고 보니 "나는 안다"는 말을 하기가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모른다는 것도 모른다"는 말을 자주 자주 경귀(警句)삼아야겠다.
"엉터리로 알면서 제대로 아는 것 처럼 맹신에 자주 빠진다"는 말로 자제의 고삐를 조여야겠다.
이러고서 감히 -건설적인 비판이 아닌- 남의 잘, 잘못을 거론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