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하여 부르는 호칭에 어르신이라는 것이 있다.
통상적으로는 나이가 많다거나,
항렬(行列)이 높다고 해서 부르는.
그렇다면 여기서
'유아를 성인의 어르신이라고 한다면...' 한 뜻은 어디에 속할까?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터무니 없는 말일까?
아니다.
틀림없는 사실이다.
단지, 사람들이 미쳐 알아차리지 못 했을 뿐 이다.
항렬로는 나이 어린 조카나, 뱃 속의 할아버지도 있을 수 있으니 그건 논외로 하자.
유아를 1세 미만, 성인을 20세 이상이라고 하자.
동시(같은 시간대)에, 공간적으로(여기와 딴 곳을 구별하여) 유아와 성인을 따로 세워 놓고서 '유아는 성인의 어르신이다' 했다간 아마도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
허나 동일 공간(같은 몸)에서, 시간적으로(이때와 나중, 과거를 구별하여) 유아와 성인을 따로 본다면 '유아는 성인의 어른이다' 하거나 '성인은 유아의 후순위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났거나, 먼저 대접받는 것을 어르신이라고 한다면, 분명히 유아는 어른보다 먼저 출생했으니, 어른보다 어른이다.
유아가 자라서 어른이 될 수는 있어도, 어른이 자라서 유아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서 새삼스레 '유아가 성인의 어른이다' 하고 주장하는 것은 목적이 있어서다.
유아에게서 배을게 너무나 많고, 배워서 쓰면 좋을 게 매우 많아서다.
말 없이, 칭찬이나 꾸중도 없는 유아의 가르침을, 그저 깊이 주의해서 배우면 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유아로 부터 점점 멀어지는 것 이다.
어른스러움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어른스러움에서 더욱 더 멀어진다는 것 이다.
나는 유아들이 걱정하는 것, 많이 먹고 가지겠다고 싸우는 것, 제 주장이 옳다고 다투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런 일을 전혀 하지 않고도 자유롭고 평화롭게 자라는 것만 보았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어른스러움은 진정한(유아기의) 어른스러움에서의 일탈이고, 퇴락이다.
진정한 어른스러움에 비하면 점점 더 철부지가 되는 것 이다.
이 사람의 정신 기능인 나는 어르신이 만든, 어르신의 작품(?)이다.
이 사람이 어른으로 있었을 때(유아기)를 나는 알지 못 한다.
허나, 다른 성인들의 어르신이 되어 가는 유아들을 보면서 나의 어른을 배울 수가 있고, 배워야겟다.
아직도 이 몸 안에 온전히 남아 있는 어른의 본성을 되살리기 위해서.
성인(成人)에는 어르신이라는 본성을 휘덮고 있는, 그 본성에서 일탈하고 퇴락한 덩어리인 마성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다른 유아를 보면서 본래의 성품(본성)을 제대로 살리고, 혼란과 무질서와 투쟁적 현상들을 보면서 후천적, 인위적인 마성을 뿌리채 뽑아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