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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功), 잘못(過)을 말 하기.

나 아닌 내 2006. 12. 9. 12:21

잘, 잘못을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말을,

하지 말아야 하는걸까,

해야 하는걸까?

 

말 한다면,

크고 강하게 해야 할까,

작고 부드럽게 해야 할까?

 

잘 해서 공(功)이 있다는 것은 남이 알아 주는 것 인가?

알아 준다는 것은, 남이 나의 공이라고 알아서 나 에게 준다는 뜻 인가?

그렇다면 말 해야, 인정해 받을 수 있겠지....

 

남이 알지 않거나 못 하더라도 내가 공이 있다고 알면 나 에게 있는 것 인가?

그렇다면 굳이 남 에게 이야기 할 필요가 없겠지....

 

공이 있느냐, 없느냐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있다고 보상을 받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보면 대답이 달라진다.

보상을 받아야 한다면 남 에게 말 해야 주건 말건 할 일이 아닌가....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면 굳이 남 에게 말할 필요가 뭔가.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말 해야 한다면 큰 소리로, 자주, 많이 할 수록 결과가 좋을까, 나쁠까?

그거야 상대방의 마음 나름이겠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가?

 

당신을 도운 공이 있다고 큰 소리로, 자주, 많이 말 하는 사람을 당신은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보상도 듬뿍 해 주어야지.." 하는 마음이 나오는가,

"공도 별로 없으면서(또는, 공이 없진 않지만) 너무 심하쟎아..."하는 마음이 나오는가?

 

사람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지 않는가?

 

남 에게 도움을 주었다(공이 있었다)는 것은 매우 크게 내 세운다.

남 으로 부터 공 있다는 인정을, 그 보상을, 그 것도 크게 받아야 좋겠다는 의미에서.

 

남 에게 해(불편)를 끼쳤다(과오가 있다)는 것은 말 하지 않거나 작게 한다.

남 으로 부터 허물이 있다는 인정을, 그 책임 추궁을, 그 것도 가급적 받지않는게 좋겠다는 의미에서.

 

위와 같은 의미가 이미 형성되어 있다면, 그와 다르거나 반대를 선택한다는 것은 저절로 나쁘다(싫다)는 의미가 된다.

공을 말 하지 않는 것, 허물을 스스로 말 하는 것이 바보짓인 것 처럼.

 

그런데 그런 사람의 상대가 되면 정반대의 의미를 갖는 사람이 많다.

공을 스스로 말 하는 것을, 허물을 스스로 말 하지 않는 것을 나쁘다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자, 그러면 이와 같이 서로 상반되는 마음의 사람들 끼리 상대로 얽히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의 공을 크게 인정하여 보상해 달라"는 사람과 "별로 도움도 되지 못한 사람이 내 세우기는 너무 심하다" 하는 사람이 어울리면 그게 친밀관계로 될까, 적대관계로 될까?(이전에 비하여 어떻게?)

 

또, 자신의 허물을 거의 표현하지 않는 사람에게 "너의 잘못이 크니 책임지고 배상해 내라"는 사람과 "별로 잘못한 것도 없는데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한다"는 사람이 어울리면 그게 어떤 결과를 발생케 할까?(이전에 비하여 개선?, 개악?)

 

그런가 하면, 타인이 이미 공 이라고 알고 있을 정도의 공도 스스로 말 하지 아니하거나, 남이 말 하면 "공은 무슨.....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한다면 그 상대방은 뭐라고 하는가?

"그래 당신 말이 맞네" 할까, "겸손까지 하시니..."하면서 더 크게 공을 인정하고 보상하려 할까?

 

또, 타인이 이미 상당한 과오라고 알고 있을 정도의 과오도 스스로 인정치 않고, 남이 말 하면 "그게 무슨 과오라고 어쩌다 모르고 한 작은 실수에 불과한 것을...." 한다면 그 상대방은 뭐라고 하는가?

"그래 당신 말이 맞다" 할까, "저렇게 뻔뻔스럽기 까지 하니..." 하면서 과오를 더 크게 인정하고 문책(또는 보복)하려 할까?

 

모든 사람은 각자마다 따로 가지고 있는 두뇌 속에 "무엇보다는 무엇이 더 낫다(좋다)느니, 무엇이 더 못 하다(나쁘다)느니" 하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게 서로 비슷한 사람도 있고, 다르거나 정반대인 사람도 있다.

또,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의식과 소수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의식도 있다.

 

그런가 하면 상대방이 어떤 의식을 가지고 있느냐를 쉽게 알 수가 없다.

때로는 상대방의 명백하고 단호한 말 조차도 진심과 다를 수가 있다.

그러면서도 서로 상대되는 사람들끼리 잘(功), 잘못(過)을 거론하는 일이 없을 수가 없이 살아 간다.

 

이 거론이 서로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일어나면 과정이나 결과도 좋겠지만, 타방이 싫어하는 방식으로 일어나면 결과는 물론이고 과정부터도 나쁘지 않기가 어렵다.

 

바로 상대방이 잘, 잘못의 표현을 스스로 어찌 하기를 좋아하는가,  

또 남이 어찌 하기(해 주기)를 좋아하는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 다음에, 상대방이 좋아하는 방식을 내 마음에서는 싫어하는 방식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과정만 본다면 하기 좋아하는 걸 하고, 하기싫은 걸 안 하면 그만이라 하겠지만, 결과(상대의 반응과 나 에게로 올 영향)를 중시한다면 그렇지 않은 (역) 선택도 해야 할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흔히들 "자신의 허물은 크게 말 하고(그래야 상대가 관용한다), 자신의 공적은 작게 말 하라(그래야 상대가 크게 보상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정작 하고 있는 바는 그와 정반대이다.

그런 이야기대로 하기도 어렵고, 하고 난 결과도 신통챦다 여겨져서다.

  

결국 인생에 보편적인 정도(正道)는 없다.

오직 개별적, 구체적으로 발견하거나 건설해야 야 할 정도(程度)가 있을 뿐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