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를 미워해야만 한다"는 것은 하나의 의견이다.
이 의견속에는 주체가 있는가?
"그를 미워해야만 하는 나"라는게 하나의 주체인가?
모든 의견은 그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두뇌 속에 있다.
그러니, 그 어떤 대단하고 중요하다는 의견보다도 그 것을 담고 있는 두뇌가 더 먼저이고, 크고, 소중하다 해야 당연하리라.
물론, 그 두뇌를 가지고 있는 몸 전체의 주인(그 사람의 핵심)보다 먼저이거나, 크거나, 소중하다 할 두뇌가 있을 수 없다는 것도 당연하고.
그렇디면, 이런 글을 읽으면서 알아차리는 나는 무엇인가?
하나의 의견을 보거나 들어서 아는 자 이다.
그러니 그 어떤 의견 속에도 있을 수 없다.
여기서 "나"라는 이름에서 두 가지 정반대의 차원을 발견하게 된다.
자칭하는 나, 타칭되는 나 이다.
나 스스로 칭하는 나는 자칭하는 나 이고,
나 에게, 나 라는 이름을 달고 알려지는 자는 나로서는 -그로서는 자칭일 수 있어도- 나로서는 그 것을 내가 아무리 나 라고 호칭해도-타칭이다.
비유하자면 홍길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이 둘 있을 때,
나는 홍길동 하면 자칭이고, 너는 홍길동 하면 타칭인 것 처럼.
마찬가지로 "나" 라는 이름을 둘이 달고 있을 때,
나가 나 라고 하면 자칭이고, 나가 나 아닌 것을 나 라고 하면 타칭인 것 처럼.
그래서 나 라는 이름에 진짜와 가짜가 있을 수 있는 것 이다.
가짜란, 가짜인 줄 아는 사람에겐 더 이상 가짜가 아닌 다른 그 무엇이고, 그걸 모르는 사람에게만 -진짜차럼 여겨지는- 가짜이다.
예컨대, 으스름 달밤에 땅 위를 기어 가는 뱀이 보일 때 그게 사실이라면 가짜 운운은 물론이고, 진짜라는 말을 하는 일도 없다.
그런데 그게 사실은 바람에 흔들리는 새끼줄인데, 뱀 이라고 알고 말 하는 사람이 있고, 그 것이 착각이라고 아는 사람에게서만 "그건 진짜 뱀이 아니야, 가짜야" 하는 말이 나오게 된다.
그게 사실 그대로 새끼줄이라고 아는 사람은 진짜니, 가짜니 하지 않는다.
그게 뱀 이라고 아는 사람도 진짜니, 가짜니 하지 않는다.
그게 뱀이라고 하는 사람과 그게 새끼줄이라고 하는 사람이 서로 반대되는 소리를 해야 서로가 제 주장을 진짜, 상대의 주장을 가짜하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라는 이름의 자칭자와 타칭 대상의 구별도 그걸 아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더 이상 있을 수 없다.
아는 순간 부터 대상을 "나" 라고 타칭하진 않을 것 이므로.
또, 자칭인지 타칭(대상)인지를 구별하지 못 하고 혼동 상태에 있는 사람에 있어서도, 그런 구별을 하지 못 한다.
그런 구별을 한다면, 혼동이 있을 수 없으므로.
결국, "나" 라는 이름으로 자칭하면서 -자신이 아닌- 무언가(대상)를 "나" 라는 이름으로 아는 사람만이 나도 나 라 하고, 나 아닌 것도 나 라고 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이다.
이제 "나는 그를 미워해야만 한다"는 하나의 의식(의견)이 그 것을 -대상으로 하여- 아는 나 와는 어떤 관계인지 살필 차레이다.
그건 분명히 내 게는 알려지는 대상이지, 그 것을 아는 나 자신은 아니다.
내가 아무리 "나" 라는 이름을 붙여서, 나 자신처럼 영원히(?) 확신해도 그건 나 자신일 수가 없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의 나(정신)는 그 것을 자신과 혼동한다.
단순한 혼동이 아니라 전도 망상식 혼동이다.
나 자신은 망각하고, 나 아닌 그 것은 나 라고 동일시 되는 식 이다.
비유하자면, 영화를 관람하는 자가 자신을 망각하고, 영화 속의 특정인(주로 주인공)을 자신처럼 착각하는 것 처럼.
영화 속의 주인공이 "나", "나는", "나는 그를 미원한다"고 아무리 크게 외치고, 주변 사람들(출연 배우)에 의해서 박수 갈채를 받아도, 그 것은 그 영화를 보는 나 와는 아무 상관도 없지만, 나 또한 박수 갈채는 물론이고 고함과 괴성을 지르고, 심지어는 심장마비도 불사(?)하는 일도 있으니...
그 어떤 의견 속의 명시 또는 잠재적인 "나" 라는 이름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 아니고, 나의 주인인 참 자기도 아니다.
그저 하나의 정보와 의미(意識)이거나, 그 연장으로서의 의견, 의욕, 의지일 뿐 이다.
그러니 나 자신으로서의 각성을 잃고(불각, 망각)그걸 나 자신처럼 여기거나(동일시), 자기(주인)보다 더 중시하는 짓을 그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각의 확립과 동일시를 깨달음에 지체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