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지 않는 것을 바라기를 불가망(不可望)이라 하자.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불가능(不可能)이라 하자.
하고 나면 하지 않은 것 보다 해로운 것을 불가행(不可行) 또는 불가당(不可當)이라 하자.
사람(그의 정신)들이 위의 세 가지만 옳지 않다(不可)고 여겨서 스스로 버린다면
삶이 매우 단순하면서 순탄하고 조화롭게 평안할 것 이다.
정신이 어리석은 상태에 머물러서 그 세가지가 불가(不可)임을 모를 뿐만 아니라,
그러다(모르다) 보니 그게 마치 바람직 하고(可望), 제가 할 수나 있고(可能),
하면 유익한 일이나 생길 옳은 일(可行)인 것 처럼 오인, 오해, 오판된다.
이런 착시적 환상은 너무나 미묘하다.
유해한 일을 유익한 일 처럼 여기게 되는 착시현상 하나만 예시해 보자.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고,
세상을 원망하면서 과음을 하고 살림살이를 부수고,
말리는 가족들에게도 폭행을 가하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의 의식계에는 그런 짓(行-身識)에 올바르다(可)는 의미도 없고,
옳지 않다(不可)는 의미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 그는 그런 짓을 하면서 옳다고 여겨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르다는 의미를 알면서 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옳지 않다, 하지 말라, 참아라 하는 말에 그토록 강하게 거부(반항?)적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자신도 모르지만 "당연하다"는 의미가 형성되어 있는게 아닐까......
여기서 "당연하다"는 의미가 얼마나 부당하게 사용되는 일이 많은지를 살펴 보고자 한다.
가망이 없는 것을 바라면서도, 가능하지 않은 것을 하려고 하면서도,
하면 해로울 일을 하면서도 당연시(當然示 : 당연하다 여겨짐) 되니까.
그러는 것이 그러지 않는 것에 비하여 "부당하다"는 의미가 연결되어 있고서는
결코 그리 하려고 하지 않겠지만, "당연하다"는 의미까지 있다면
어찌 그런 마음을 따르지 않으려 하리오.
결국은 당연하다와 부당하다를 구별하는 일이 정상이냐, 비정상이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바를 수도, 그를 수도 있게 된다.
무엇(어떤 것, 일)에다 당연하다거나, 부당하다는 의미를 붙이는 일을
삶에 도움이 되느냐, 해로움이 되느냐에 따라서 해야 정상이다.
그렇지 않고 -가망성, 가능성, 가행성(가당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 괴상한 단순비교의 틀에 따라서 정당 여부가 가려진다면 비정상이다.
가망있는 제 봉급과가망없는 남의 봉급이 액수로만 비교되고,
사랑 가능한 자기 배우자 얼굴과 불가능한 남의 배우자 얼굴이 미모로만 비교되고,
현재의 노약한 자기 몸과 과거의 건강했던 시절이나 건강한 장년과 단순비교 되면
그야 말로 불가(不可), 불가, 불가의 극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