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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으로 차렷] 하기 - 귀신(착각, 혼동에 빠짐)에서의 탈출(?).

나 아닌 내 2024. 10. 12. 13:25

"정신 차려 !!", 크게 소리질러 꾸짖기도 하고,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조용히 진지하게 사정해 보기도 한다.
그런다고 "정신 차리기"라 할만 한 일을 하는 사람을 나는 보지 못 했다.
왜 그럴까?

첫째, 그런 소리를 하는 자(사람)의 무엇이 그런 소리를 스스로 내는지,
그저 두뇌에서 기계적, 조건 반사적으로 그런 소리가 나갈 뿐인지를
모르고 있고,

둘째, 그런 소리를 듣는 자(사람)의 무엇을 상대로 삼고 말 하는지
모르고 말(?) 하고, 듣는 자는 듣고 있고,

셋째, 그 "정신(精神)"이라는 두 글자(음성)라는 기호 형식에 연결되는
뜻(두뇌 속 意識)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정신이 정신이지" 하는 식으로
아는 것이 제대로 아는 것인 줄 오인(誤認)에 빠져 있고,

넷째, 이상 세 가지를 제대로 알고 있어도 "정신 차리기"인지,
"정신 차렷"인지를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먼저 사람의 입을 통하여 나오는 말의 출처는 다음 둘 이다.

첫째는 두뇌에 형성되어 있는 의식계에서 학습된 그대로 기계적,
조건 반사로 나오는 경우로서, 그 사람의 정신인 [내]로선 정확히
알지도 못 하고 그저 피동적, 수동적, 소극적으로 알려지는 그대로를
아는데 불과한 경우이다.
이하 "나의 말"이라 하자.

둘째는 두뇌 속에서 두뇌를 부리는 일(의식을 아는 일도 그 중의 하나)
을 하는 정신인 [내]가 스스로 주도하여 말을 만들거나 통제하는
자주적, 능동적, 적극적인 경우이다.
이하 [내 말] 이라고 하자.

"나의 말"과 [내 말]의 다른 점은 다음과 같다.

1) 주체 : "나의 말'은 의식계(좌뇌)의 주인공(我=나)에서 나오고,
[내 말]은 [내](우뇌)가 스스로 두뇌(좌)에다 한다.

2) 목적 : '나의 말"은 대체로 명백한 목적이 없고(無, 盲목적),
[내 말]은 본분을 실현하려는 목적으로 한다.

3) 방향 " "나의 말"은 두뇌(좌)에서 밖으로 나오고,
[내 말]은 두뇌(좌)에게 (속으로) 넣는다.(그래서 묵언도 많다)

이 정도로 서론적인 부분은 그치고 여기서 사용하는 단어의 뜻
(이 두뇌속 意識)부터 명확히 밝히고자 한다.

정신(精神) : 사람의 두뇌 속에서 두뇌를 부려서 -감각, 인지, 사고,
운동을 포함한 표현행위등을 수행하는 기관을 신(神)이라 하고,
그 신이 스스로를 칭하는 이름이 [내] 이다. (곧, [내]가 신 이다)
부디 신앙적인 신 개념과는 전혀 무관하니 오해 마시기를...

이 신(神)이 [스스로(아는 주체로서) 스스로를 객체로 삼아서
알 수는 없고, 오직 스스로가 잠 에서깨어 나 있는 순간에만
[내 스스로가 깨어 나 있구나..]하는 식으로만 알 수 있을 뿐 이다.

알수 있다는 것은 항상 안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때는 모를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알 수도 있다는 뜻 이다.
따라서 사람의 정신 수준에 따라서는 일생 동안 한번도 모를 수도
있고, 거의 모든 깨어 있는 동안에 알고 있는 수도 있다.

바로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내 스스로가 깨어 나 있구나....] 하고 아는 것을 깨달음(覺), 자각(自覺)이라고 한다.
그런 줄 모르는 것을 불각이라 하고 이 불각(不覺)중에 [내]가 [내]게
알려지는 객체에 불과한 [내] 아닌 것(주로 의식계의 자기 자신에 관한
我意識인 '나')을 [내]라고 아는 수가 흔히 있는데 이를 착각(錯覺)
이라고 한다.

여기서의 착각(錯覺)과 착오(錯誤)를 구별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사실이나 법령의 "존재하는 그대로를 안다"는 경우가 정상이라면,
그와 다르게 존재하는 "것 처럼" 의식되어서 아는 경우를 착오라 하는데
이는 -사실에 관한 착오이건 법령에 관한 착오이건- 대상(객체)에의 착오인
반면에, 착각은 주체 스스로가 아닌 것을 주체 스스로라고 아는, 주체에의
착오라는 점 에서 구별된다.

주체 스스로에 관한 착오를 객체의 착오와 구별하기 위하여 착각이라 한다.
착오(錯誤)는 대상을 잘못 아는 지적(知的)인 일인데 반하여,
착각(錯覺)은 대상으로는 알 수가 없고, 스스로는 깨닫기(自覺)만 가능한,
스스로를 알 수 있는 것 처럼 오인, 오해, 오판한 정신 자체의 미숙함 이다.

이 착각의 소산이 바로 순수한 신(神)이 마치 귀신(鬼神) 감투를 쓰고
있는 것 처럼이다.
비유하자면, 영화관 관람석에 앉아 있는 사람(神)이 폭격 장면에 놀라서
도망가는 사람(鬼神)과 유사하다.

이 귀신상태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고, 그 본래의 신(神) 스스로 알고 있는
착각도 아니다.(착각인줄 아는 순간에 착각은 해소되므로)
스스로를 모르면서 -귀신 감투를 스스로라고- 안다고 여겨지기(착각) 때문에
귀신처럼일 뿐 이다.

귀신감투(착각)를 쓰고 있다고 본래의 순수한 신(神)이 사라지기는 커녕, 전혀
변하지 않는다는 뜻을 강조하기 위해서 "항상 맑은, 순수하다"는 정(精)을
앞에 놓고 언제나(항상) 정신(精神)이라 한다.

바로 이 귀신상태에 있는 정신을 향하여 "귀(鬼)"라는 감투(착각의 산물)를
벗고, 본래의 순수한 신(神)임을 깨닫기만 하는 일을 스스로 차려서 하라는
말이 "정신으로 차렷하라"(정신차려, 정신 차렷)이다.

1). 그리워 하는 '나'를 [내]라고 아는 착각 상태를
"그리워 하는 나(그리움)에 빠졌다" 하고,

2). 원망하고 미워하는 '나'를 [내]라고 아는 착각상태를
"원망하는, 미워하는 나(원망과 미움)에 빠졌다" 하고,

3). 안 되는 일을 바라고, 못 하는 일을 하고싶어 하고, 안 돼는 일을 해야 한다
는 '나'를 [내]라고 아는 상태를 미련스럽고 고집스리운 나(미련, 고집덩어리)
에 빠졌다"고 한다.

4) 체념적인 '나', 불안에 떠는 '나', 비관적인 '나' 등등을 [내]라고 착각에
빠지면 [내]는 물론이고, 이 사람(본인) 자체가 그런 사람인 것 처럼 몰고 간다.

자기의 삶을 안전, 건강, 순탄, 조화롭게 운전해 가야 할 본분을 진 신(神)이,
자기 인생을 좀 먹고 파괴, 파멸로 모는 귀신 놀음에 빠진 줄 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