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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믿음(正信)과 그릇된 믿음(誤信).

나 아닌 내 2025. 2. 6. 09:24

이른바 상상이니 가상이니 하는 것은,
1), 감각적으로 실재(實在) 여하를 확인할 수 있는 것에 관한 두뇌 속 정보(識)가
아니라,
2).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를 감각적으로 확인할 수 없고 두뇌 속에 가정적(假定的)
으로만 형성되어 있는 정보(識)이다.

예컨대, 휴전선 철책은 실제로 확인 가능하지만, 통일후에 철책이 철거되고 없는
가상은 실제로는 확인이 불가능 하다.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정보(이하 驗識이라 하자)와 상상만으로 구성된 정보(이하 想識
이라 하자)는 두뇌 속 정보(識)라는 점 에서는 전적으로 동질이다.
실물 사진이나 인물화를 찍은 사진이나, 사진이란 점에선 같듯이.

그렇지만, 아무리 정보라는 점에선 같아도 실재 여하를 확인 가능한 정보와
확인 불가능한 정보를 동일시 하는 것은 필요 유익한 경우 아니면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유해한 부작용이 초래되기도 한다.

소위 "믿음(信)"이라 하는 것은, 상상인 정보(想識)를 실제로 있는 것에 관한
정보라고 볼까(믿음), 보지 않을까(안 믿음) 하는 상대적 언어중 전자를 선택한
마음(信意)이다.

예컨대, 누군가로 부터 배우자의 불륜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들은 이야기
는 실제로 있(었)지만, 그 이야기 내용과 같은 사실이 실제로 존재했는지 여하는
오직 상상일 뿐, 확인 불가능 한 상태일 때 "그게 사실일꺼다"(믿자=信意) 할 수도 있고,
"사실일리 없다"(안 믿자=不信意)) 할 수도 있는 것도 소위 마음먹기(선택) 나름이다.

그런데 위와 같은 -믿자/ 믿지 말자에 관한- 선택을 함에 있어서,
선택할 수 있는 자(그 사람의 정신기관) 스스로 선택하는 경우(自信)는 극히 희소하고,
두뇌 속(의식계)에서 기계적, 자동적, 습성적으로 생성되는 믿음을 따르는 것이 소위
맹신(盲信)이다.

[내] 스스로 자기 인생에 필요하고 유익할 것 이라는 검토와 판단을 거쳐서 선택하는
믿음(이게 바로 올바른 믿음, 즉 正信이다)이 아니라,
자기 인생에 전혀 필요치 않고 유해하기만 할 믿음(이게 바로 그릇된 믿음,
즉 誤信이다)을 제대로 볼 안목(지혜)이 없어서 장님같다고 맹신(盲信)이라 한다.

개인적 인생사나, 인류의 삶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살아 갈 수는 전적으로 불가능 하다.
극히 적은 일부만을 알고, 거의 대부분을 모르는 상태로 살 수 밖에 없다.
바로 이 보르는 부분에 적응하는 장치가 소위 믿음이다.
모르는 것을 아는 것 처럼 여기고 살아 가려는..

그런데 실제로 알수 없는 것을 믿음으로만 알고 대응한 결과가 그 본인과 상대,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에 마련해야 할까?
바로 믿음을 올바르게 행사(正信)함에 있다.

가급적 믿음에 의지하지 말고 실제로 확인이 불가능한 경우에만 국한하자.
믿음의 대상인 상상을 객관적, 과학적, 합리적, 효율적인 각도에서 검토하고 믿자.
믿음의 폐해가 발생하거나 예상되면 믿음을 초기함에 주저치 말자.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알면 상상에, 그걸 믿음에 빠질 일이 적게 된다.
모르는 것을, 모르면 안 돼는 것 처럼 여겨지면 상상으로라도 아는 것 처럼 믿음에
빠지게 된다.

사람의 정신 앞에 얼마나 많은 상상이 있는지...
그리고 그 것을 맹신에 빠진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그래서 혹은 안심하고, 혹은 불안과 불만, 불평에 빠지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