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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중대긴급소요(重大緊急所要)] 하여서?

나 아닌 내 2025. 5. 22. 09:34

사람의 정신이 아는 것(두뇌 속 의식적 구조물인 의식, 사고, 상념등) 중에
그 마음(意) 부분에 "요(要)" 가 연결되어 있는 정보(識)를 "요한 것"(약칭 "요"),
"쓸데 없다"가 연결되어 있는 것을 "불요(不要)", 그런 "요"가 전혀 연결되어
있지 않는 것을 무요(無要)"라 할 수 있겠다.

대상에 연결하는 "요(要)" 대신에 목적적 주체 위주로 하는 용(用)으로 바꿔서
"용", "불용", "무용"이라 쓰기도 하지만 그 뜻은 대동소이 하다.

그 어떤 대상인 정보(기억이나 상상인 識)가 떠 올라 있을 때, 그 것(識)에 연결된
마음(意)에 따라서 그걸 품고 있는 사람의 반응이 -가장하지 않는 한- 엄연하게
다르다.

1). 쓸모(쓰임새=所要, 所用)가 무겁다(重), 크다(大), 꼭(緊), 급히(急), 있어(有)라는
마음이 연결되어 있는 대상(識)인 경우에의 반응과

2). 쓸모가 가볍다, 작다, 약간, 급하지 않은, 유별나게 반응할 일 없다는 마음이
연결되어 있는 대상인 경우에의 반응은 상반(相反)된다.

3). 위의 1), 2) 그 어떤 마음도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 반응도 일어나지 않고.

예컨대 타인을 만났을 때 그가 고개를 돌리는 모습을 보게 되면
1).중대한 모욕으로 여겨져(중대한 의미),
"감히 나를 무시하고 외면하다니 참을 수 없다"고 성내는 반응.

2). 별일 아니라고 여겨져,(사소한 의미)
"그러거나 말거나" 하는 경미한 반응.

3). 그 어떤 마음으로도 여겨짐이 없어서(무의미, 無心)
아무 반응도 일어나지 않음.

문제는 그런 반응이, 그 사람의 삶과 주변 사람들의 삶에 과연 어떤 파급효과를
초래하는가 여하를 알기는 고사하고 의문조차 만들어서 풀려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데 있다.

단적으로,
그 사람의 삶에 아주 무겁고, 크고, 반드시, 급히 소요되는 것(사람, 사물, 일)
인데도 그 것이 가벼히, 작게, 별무(別無), 급할 것 없이, 쓸데없는 것 으로 여겨지고
있거나,

반대로 그 사람의 삶에 가볍고, 작고, 특별할 것 없고, 쓸데 없는 것인데도,
그 것이 엄청나게 무겁게. 크게, 유별나게, 쓸데가 있는 것 으로 여겨지고 있는
경우가 결코 드물지 않다는데 있다.

예컨대, 크게 성내고 싸울 일도 아닌데 크게 성 내고 싸우는 경우가 있고,
단 한번이라도 분명하고 확고하게 중대한 일 이라고 밝혀야 할 일인데,
참고 견디는 식으로 화를 더욱 키우는 경우도 있다.

아직도 잔존해 있는 소위 고부간의 갈등이란 것에 관하여 살펴 보자.
하는 짓은 물론이고, 말, 표정, 심지어는 가까운 관계로 있는 것 만으로도
화가 나서 견디기 어려운 "시어미 X 며느리"를 고부갈등이라 한다.

전통적으로는 시어미는 "그럴 수도 있다"고 당연시 되는 경향이 있고,
그러니 며느리는 "참고 순종해야 한다"고 당연시 되는 윤리관이 일반화 되어 왔다.
누가, 누구를 위하여 , 어떤 도움이 되라고 만든 윤리관인가, 의문조차 없는...

자, 그런 윤리관을 과연 누구의 무엇을 기준으로 평가, 판단, 선택해야 할까?
1). 윤리관 그 자체가 모든 평가, 판단, 선택의 기준이어야 할까?
2). 사람의 삶에 도움이 되느냐, 해로움이 되느냐를 기준으로
그 정도의 경중(輕重), 대소(大小), 완급(緩急),요부(要否)를 평가, 판단,
선택해야 할까?

지금까지의 일반적 상식은 위의 1)과 그에 대한 "순응/반감, 저항" 이라는
구조를 이루고 있다.
시어미는 당연하다고 학대를 일삼고, 며느리는 내심으로 반항하면서
표면적으론 당연한듯 참으면서, 순종하려 애쓴다.

그 결과는 어떻던가?
그 참는 자(며느리)에게 복이 찾아와서 보상받던가?
그 만행자(시어미)에게 끝까지 군림하면서 행복한 삶이 보장되던가?
결국에는 양 당사자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닥칠 불행과 상처를
막을 수 없지 않던가?

만약에, 시어미의 구박이 처음 있을 때 과감히 거부, 회피, 절연등을
선택하겠다 선언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그리 하지 않고 참고 견딘 결과가 그 누구의 삶에 도움과 해로움, 그 어느
쪽이 클까?

부부 사이의 불화도 마찬가지다.
칼 같이 결별하는 것도 능사가 아니지만,
물베기라고 참고 견디는 게 반드시 미덕도 아니다.

서로 모두의 삶에 무엇이 필요/불필요 한지, 그 정도의 경중, 대소, 완급을
가려서 진정한 소용 위주로 합의를 시도하되, 그럴 의지가 없다면 그
스스로나 상대를 부부관계에서 절연하는 것도 차선책 이상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