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가능성이라는 말을 둘로 구별하면 기대와 가능성이다.
기대는 "뭔가가 어떻게 있으면 좋겠다"(적극적 기대), 또는 "뭔가가 어떻게 없으면 좋겠다"(소극적 기대)는 의미적 욕망(意慾)을 뜻 한다.
비가 많이 내리면 좋겠다(적극적 기대)거나, 비가 내리지 않으면 좋겠다(소극적 기대)거나 하는 마음이다.
가능성은 기대하거나 상상하는 바가 실제로 이루어 질 수 있으리라고 믿는 지수(몇할, 몇 %)를 뜻 한다.
이 가능성에는 주관적 가능성(나 자신이 실현되리라고 믿는 바), 객관적 가능성(타인이 실현되리라고 믿는 바)이 있고,
보편적 가능성(대다수의 사람들이 실현되리라 믿는 바), 특별한 가능성(소수의 사람이 실현되리라 믿는 바)이 있고,
전문적 가능성(전문가가 믿는 바), 일반적 가능성(비 전문가가 믿는 바)이 있다.
예컨대 내일 비가 올 가능성이 있느냐(확율 몇 %인가?)는 문제를 놓고,
내가 50%다(주관적 가능성), 옆 사람이 70%다(객관적 가능성), 대부분의 사람들이 30%다(보편적 가능성), 오직 한 사람이 100%다(특별한 가능성), 기상청에서 80%다(전문적 가능성) 하는 것 등이다.
어떤 사람들은 가능성, 특히 객관적 가능성이라는 것이 사람의 주관(의식적 믿음)이 아니라, 외부에 사실로 존재해 있고 그 것을 탐구, 발견하여 아는 것이 가능성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건 전혀 근거없는 오인(오해?)이다.
아무리 전문가라도 외부에서 그 어떤 사소한 가능성조차 발견할 수는 없다.
단지, 외부를 관찰하고 추리하여 변화를 예상하여 가능성을 의식화 할 뿐 이다.
즉, 외부에는 가능성이 있지 않고, 사람의 두뇌에 있는 가능성도 외부에 사실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단지 말 이나, 문자의 형식으로 표현되지만, 그건 말 이나 문자이지, 가능성 자체는 아니다.)
결국, 기대 가능성에 있어서 기대도, 가능성도 모두 그걸 의식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의 두뇌 속에 있을 뿐, 그 이외의 어디에도 없다.
다만 기대가 외부적 제약을 덜 받을 수 있는 반면에, 가능성은 외부적 사실을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질적 차이가 있을 뿐 이다.
그렇지만, 기대와 가능성이 질적으로 다르다 할 수도 있지만, 합리적인 정신에게 있어서는 기대와 가능성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즉, 가능성이 있어야 기대하니, 기대하는 것과 가능성은 일치하니까.
그런가 하면 비합리적인 정신에게 있어서는 이 두가지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일 수도 있다.
가능성이야 어떻건 간에 기대는 제 마음대로 하는 수도 있으니까.
(예 : 미스 코리아 출신과 결혼할 가능성이 전무한 자가 결혼을 확신할 정도로 기대하고 있었다지....)
어쨌거나 기대와 가능성을 하나로 묶어서 "기대가 곧 가능치이고, 가능성이 곧 기대치이다" 하는 뜻 으로 기대 가능성으로 쓰는 것이 매우 유익하다.
그로써 기대와 가능성이 따로 엇갈려서 불화가 발생하지 못 하게 되므로.
좋은(멋진) 배우자를 만나고 싶다는 기대를 갖는 것은, 자기의 제반 조건을 정확하게 인지한 다음에 "과연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좋은(멋진) 사람일까"를 심사 숙고해야 한다.
이때 주의할 것은 기대치를 높게 책정해 놓을 수록 그에 해당되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울 것 이고, 일부러 낮게 책정해 놓으면 만나긴 쉽겠지만 만족하긴 어렵다는 것을.
어쨌거나 이런 저런 과정을 거쳐서 친구로, 연인으로, 애인으로 교제하다가 결혼을 하여 배우자가 되면 이제 만남의 문제는 끝 나고 삶의 문제만 남는다.
따라서, 만나기 이전에 품고 있었던 "좋은 사람 만나기"는 소멸시키고, "만난 사람과 좋게 살기"의 문제를 가져야 한다.
"좋게 살기"의 비결은 그걸 포기하는 것 이다.
오히려 상대(배우자)와 함께 사는 것 자체(전부)를 좋게 의식화 하기를 굿 세게 해야 한다.
결국, 기대 가능성이라는 것을 자기와 함께 살아 갈 짝지와의 행복을 목표로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이라야 행복하고 될 수가 있다.
문제는, 그 상대방이 너무나 어리석으면 차라리 그걸 모르는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것 이다.
사랑하는 나의 딸과 아들들이 배우자랑 함께 행복하고, 행복되기를 기대하면서, 나는 지금부터 그 가능성을 만드는 작업에 나서야겠다.
"쓴 나물 데운 물이 고기도곤 맛이 있어..."가 허언이 아니라 진심의 표현임을 알아차리게 도와 주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