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것이 있다.
알림으로써,
첫째, 자기(이 몸)에게 도움이 되고,
둘째, 그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고,
셋째,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될지언정 추호도 해를 끼치지는 않으리라는 확신에서.
글자(말 소리)는 하나의 현상으로서,상징적 이미지(識)와 다르고, 더군다나 표현한다고 약속된 실제 사실과도 다르다.
글자, 이미지, 실제는 영원히 더 가까이 만날 수도, 더 떨어 질 수도 없는 평행선과 같은 관계로 있다.
그런 관계를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글자는 (두뇌 속의)이미지가 아니고, (글자 이외의) 사실도 아니다.
(두뇌 바깥의)어떤사실과, 그 사실에 대한 (두뇌 속) 정보와, 그 정보의 출처인 사실처럼(?) 표현하는 글자(소리)는 매우 근사(近似)하다.
근사하다고 하지만, 질적으로는 전혀 별개의 차원으로 다르다.
하나의 비유를 제시한다.
실제의 사과, 그 사과를 촬영해서 만들어 진 사진, 그 사진 아래에 적혀 있는 (그 사과에 관한) 글자의 관계를 상정해 보시라.
실제의 사과는 먹을 수 있고, 먹으면 그 맛이 느껴진다.
(사과를 촬영한)사진을 씹는 맛과는 전혀 다른..
(사과를 관찰하여 설명한) 글자를 보는 맛(있긴 있나?)과도 전혀 다른..
내가 쓰고자 하는, 그래서 발간될 책을 읽는 사람들이 위의 뜻을 이해하실까?
글자만 보고 그치지는 않을까?(보나마나 보다도 낭비이지....)
글자를 보고서, 그 자신의 내부에서 반응으로 나오는 소리(헛소리, 난해한 소리)를 느낌에 그치지는 않을까?
어떤 글자를 보고서, 필자의 두뇌 속 뜻(識)을 모르겠다고만 하고서 그치지는 않을까?
무슨 뜻(識)을 표현코자 쓴 것 인지 알려고 하여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
그 글자로 표현코자 한 필자의 뜻(識)만 알고서, 그 의미(가치)를 파악하려는 일을 하려고나 할까?
그 의미라고 파악한 것이 과연 "모든 이(천지만물) 에게 도움이 될지언정, 추호도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고 의미화 될까?
그 보다 먼저, 누구라도 하려고만 하면 그런 의미화를 할 수 있도록 (내가) 필요하고 충분한 글을 쓸 수가 있어야는데.....
옛 사람이 설파했단다.
말은 사실로 안내하는, 인간이 만든 배와 같다.
사실에 이르기(알기) 전 에는 열심히 노 저어 가야지만, 사실에 이르고 나면 내려 놓아야 한다고.(이고, 지고 있는 이 많다)
그런데 나는 하나 더 추가하고 싶은 것이 있다.
과연 말 이라는 배이 안내로 사실에 이를 수(사실 그대로를 알 수)가 있는가(진실로는, 차원이 다름으로 불가능하다) 하는 문제와,
완전한 사실에는 이를 수 없을 때, 어느 정도에서 이르렀다(알았다)고 말을 그칠 것 이며, 그 전 이라면 어떤 경우에 계속 말을 해야 하고, 어떤 경우에는 그쳐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말의 궁극적 목적은 사람이 잘 살기 위해서다.
사실에 이르는(사실을 알게 돕는) 안내 도구라 하지만, 사실을 아는 목적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사람이 잘 살기 위해서가 목적이다.
단적으로 "사실을 알기 위해서 말을 한다"는 목적이 아니라, "사람이 잘 살기 위해서 필요한 사실을 알기 위해서 말을 한다"는 목적이다.
이런 목적적 관점에서 보자면, 과연 얼마 정도의 사람들이 목적적인 말을 하고 살아 가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목적이거나 맹목적으로 -말을 한다기 보다- 쓰레기 처리장 처럼 �아지는 말 -이라 하기도 부적당한- 소리의 범람 속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것 같은가....
내가 내고자 하는 책이 어때야 하고, 어떠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 인데.....
'그룹명2 > 진실(眞實)은 오직 이 것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하는 일. (0) | 2009.12.07 |
---|---|
마음 다스리기. (0) | 2007.10.27 |
너를 아는 나, 내가 아는 너. (0) | 2007.09.14 |
새로운 1, 2, 3인칭. (0) | 2007.09.13 |